별을 촬영하기 위해 오스트레일리아로 왔다. 빛을 얘기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물리학에 관한 다큐다. 책 읽고 그 분야 교수의 말씀을 듣고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빛은 물리학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다. 많은 학자들이 빛을 연구했다. 아이작 뉴턴은 미련하게도 햇빛을 너무 오래 관찰하다 시력을 잃을 뻔했다. 그걸로도 성에 안 찼는지 뜨개질바늘을 눈 안으로 찔러넣기도 했다. 덕분에 우리는 빛이 백색광이 아니라 수많은 색깔이 어우러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람이 빛의 속도로 날아가면 어떻게 될까. 또 한 명의 물리학 천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이런 상상을 했다. 누구나 한번쯤 해볼 법한 몽상이지만 이 과학자는 십 년이나 이 문제를 붙들고 있었다. 그 답을 풀어놓은 것이 유명한 상대성이론이다.
이러니 물리학에 관한 다큐를 만들자면 빛을 지나칠 수 없다. 우리는 태양보다는 별에 마음이 더 끌렸다. 눈이 부셔 감히 쳐다볼 수 없는 숭배의 대상보다는 은근한 빛이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어쩌면 우리 안에는 별을 쫓아 밤길을 찾던 여행자의 유전자가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면 밀애를 나누던 젊은 시절 약속의 징표가 별이었기 때문일까?
별은 북반구보다 남반구에서 잘 보인다. 인구 밀도가 낮은 오스트레일리아 서쪽은 넓고 낮은 땅이 많아 하늘 보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최근에는 별을 예쁘게 찍을 수 있는 장비도 개발됐다. 우리도 큰돈 치르고 한 대 구입했다. 어른 셋이 벌린 팔 길이만큼의 레일 위를 카메라가 천천히 움직이면서 별을 찍는 기계다. 별은 오래 찍어야 움직임이 보인다. 하룻밤을 온전히 찍으면 겨우 한 숨만큼의 촬영 분량이 나온다. 어쨌든 기특한 기계다. 밤하늘 아래를 산보하던 로맨티스트가 설계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우리는 한가득 짐을 싣고 비포장 길을 한참이나 달린 끝에 지금 머물고 있는 협곡에 들어왔다. 가이드는 아마 사방 20㎞ 안에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별은 은근하고 연약하다. 작은 인공의 빛에도 숨을 죽인다. 우리가 도시에서 멀리 도망쳐온 까닭이다. 레일을 연결하고 카메라를 꺼내고 조리개를 열고 초점을 맞추고 한동안 부산했다. 카메라맨이 스탠바이가 됐다는 신호를 주자 그제야 모두 이마 앞에 달고 있던 작은 등을 껐다. 순간 하늘에서 별을 묶고 있던 줄이 탁하고 끊어지기라도 한 걸까? 별빛이 얼굴 앞으로 철렁 내려온다. 공간을 가득 메운 별에 모두 말을 잃었다. 실구름이 보이길래 날씨를 걱정했더니 누군가 은하수라고 일러준다.
기온이 내려가니 소름이 돋는다. 숙소에서 가져온 담요를 뒤집어썼다. 촬영이 끝날 때까지 이제 꼼짝할 수 없다. 규칙적으로 열리는 셔터 소리가 이방의 풀벌레 울음과 묘하게 어울린다. 이곳 별자리는 낯설다. 북극성은 땅 밑으로 숨고 남십자성이 대신 우리를 내려보고 있다. 모두 오래된 별빛이다. 어떤 별빛은 지금 내 망막까지 다가오는 데 몇백 년이 걸렸다. 고려시대에 출발한 셈일까? 또다른 별빛은 몇억 년을 여행하기도 했다. 지구에 인간이 나타나기 훨씬 전이다. 천체망원경으로는 심지어 지구보다 훨씬 오래된 과거 시간의 별도 관측된다. 그러고 보니 별을 본다는 것은 서로 다른 수많은 시간을 같은 순간에 대면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래되고 낯선 시간들을 카메라에 차곡차곡 담아 돌아가야겠다.
김형준 교육방송 다큐멘터리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