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혼자 살 때>
[토요판] 김민경의 요리조리 TV
주변에 설 명절이 즐거웠던 사람이 없었다. 결혼 안 한 사람은 “결혼 안 하느냐”는 질문을 무한반복으로 들어야 했다. 결혼은 했지만 애가 없는 사람은 고된 가사노동과 “애는 왜 안 낳느냐”는 잔소리의 이중고를 겪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엔 ‘정상가족’의 신화가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 이 범주에 들어서지 않은 가족 구성원들은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여겨질 뿐이다. 한국 사회는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아버지, 어머니, 아들, 며느리(또는 딸, 사위), 손주까지 다 모여야 비로소 ‘훈훈한 명절’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텔레비전에서도 ‘훈훈한 명절’에 걸맞은 부담 없는 가족영화·예능 프로그램이 편성돼 이 기간에 방송되곤 한다.
그런데, 그것도 설날 당일 밤 텔레비전에 “가족 있는 분들보다 저희처럼 혼자 사는 분들을 응원하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화성인’들이 나타났다. 10일 저녁 <문화방송>(MBC)에선 설 특집 프로그램 <남자가 혼자 살 때>(사진)가 방송됐다. 기러기 아빠, 주말부부, 비혼 등 저마다의 이유로 혼자 사는 남자 연예인 6명의 일상이 가족들이 둘러앉은 안방을 찾았다. “잘나가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섭외가 됐어?” 진행을 맡은 노홍철도 깜짝 놀란 주인공들은 김광규, 김태원, 데프콘, 서인국, 이성재, 한상진. 이들의 ‘혼자남’ 경력을 합치면 무려 55년에 달한다.
“혼자 사는 게 불편하지 불행한 건 아니다”에 격하게 공감하는 이들의 삶은 어떨까. “청소와 정리정돈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데프콘은 1시간의 대청소를 마치고 매일 아침을 맞는다. 김광규는 아침으로 된장찌개를 직접 끓여 먹었다. 음식물쓰레기를 냉동실에 얼리는 ‘고급기술’도 보유했다. ‘혼자 사는 남자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집도 더러울 것이다’라는 건 편견이었다.
물론 ‘어르신’들이 보면 “아이고!” 할 풍경도 있다. 서인국의 집은 ‘쓰레기장’을 방불할 정도로 지저분하다. 이성재의 집에는 냉장고·가스레인지는 대체 왜 있는지 의문이다. 이성재는 아침엔 중국집 배달음식을, 점심엔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다. 한상진도 1인분은 배달이 안 된다며 2인분을 배달시켜 먹는다. 빨래는? 이성재는 빨래방 ‘골드회원’이다.
‘싱글 라이프’의 복병은 외로움과 잔소리다. 이성재는 유학 간 딸의 동영상을 한밤중에 물끄러미 바라봤다. 당당하던 데프콘도 “네 나이가 몇인데! 나이가! 나만 손주가 없어!”라는 어머님의 잔소리에 표정이 굳는다. “부모님과 대화는 늘 안부, 결혼, 건강 3단계더라고요.” 서인국도 동병상련의 심정이다.
‘정상가족’을 강하게 염원하는 사람들은 부정하고 싶겠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4명 중 1명이 1인가족이다. 2025년이 되면 가구 유형에서 1인가족이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한다고 하니, 그때가 되면 대체 어떤 가족이 ‘정상가족’일지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도 1인가족에 대한 이미지는 매우 양면적이다. 자유롭고 화려한 ‘싱글 라이프’에 대한 동경의 반대편에 가족 없이 홀로 쓸쓸히 죽어가는 ‘고독사’의 공포가 도사린다.
<남자가 혼자 살 때>의 주인공들은 ‘일곱 빛깔의 혼자남들’이란 뜻을 따 자신들의 모임 이름을 ‘무지개’로 정했다. 연민과 부러움의 틀로만 가둘 수 없는 다양한 1인가족이 넘쳐난다는 뜻 아닐까. 우리 사회도 이제 1인가족과 함께 살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그 첫걸음으로 명절 때 만난 혼자 사는 친척들에게 “언제 결혼할 거냐”라는 질문부터 멈춰보는 게 어떨까.
김민경 <한겨레>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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