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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내겐 너무 피곤한 ‘TV 병원’

등록 2013-03-08 19:37수정 2013-07-15 16:18

<한국방송>(KBS)의 <비타민>
<한국방송>(KBS)의 <비타민>
[토요판] 신소윤의 소소한 TV
갑작스런 허리 통증으로 며칠 누워 지내야 했다. 창밖의 날씨는 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 같은데 혼자 고여 있는 집안의 시간은 더디기만 했다. 모로 누워 며칠 내리 낮시간의 티브이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낮시간의 지상파가 주말 예능·드라마 재방송으로 채워진다면, 종합편성채널은 건강 정보 혹은 가족 문제 상담과 오락을 결합한 프로그램의 창고였다.

어느새 티브이는 병원이 되어 있었다. 티브이가 본격적으로 건강 상담실을 차린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다.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이야기하던 ‘웰빙’ 붐을 타고, 건강 정보를 담은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었다. 2004년 방송을 시작한 <한국방송>(KBS)의 <비타민> 등 전문가 집단과 연예인 등을 패널로 하는 구성의 이른바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은 당시 베스트셀러였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스테디셀러이기도 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몸과 마음이 고단해진 사람들을 치유하겠다 나선 ‘힐링’ 바람이 불면서 티브이는 마음의 건강도 함께 염려하기 시작했다.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들어주는 공짜 건강·심리 상담소에 손님들이 모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제이티비시>(JTBC) <닥터의 승부>, <엠비엔>(MBN) <황금알>과 <동치미>, <채널에이(A)> <웰컴 투 시월드> 등은 비교적 시청자 반응이 좋은 편이다. 예컨대 이런 주제들. 엠에스지(MSG)가 정말로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까, 명절증후군은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안주 없이 술 마시는 게 더 나쁜가 안주를 많이 먹는 것이 더 나쁜가, 침대와 온돌방 중 어느 쪽이 건강에 좋을까, 용서할 수 없는 남편의 버릇은 무엇인가 등등 사소한 건강 상식부터 부부 관계, 고부 갈등 등을 다룬다.

패널과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병원 상담실을 몰래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건강 프로그램에서 과별로 나온 의사들은 건강 문제에 관한 의견을 다양하게 펼쳤고, 심리 치유 프로그램에서 패널들은 속내를 풀어놓으면서 마음을 다독였다. 몸이 아파서 남들의 통증에 대한 공감이 커질 대로 커진 때문인지 한참을 ‘맞다’, ‘그렇지’ 맞장구를 쳤다. 왠지 나만 의사들이 말하는 일상의 건강 상식을 놓치고 산 것 아닐까 걱정도 들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이 정말로 우리의 건강을 되돌리고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할까. 며칠을 몰아보다 보니 치유는커녕 오히려 피로감만 쌓였다. 마음이 뾰족해지고 나니 비슷한 방송에 겹쳐 나오는 연예인 패널들의 사연은 반복적인 하소연 같았고, 일상의 건강 문제를 두고 의견을 다투는 여러 의사들의 공방은 헷갈리기만 했다. 웰빙·힐링 프로그램을 보면서 세세할 정도로 많은 정보를 얻었지만 티브이 앞에 붙박인 나의 몸과 마음 상태는 제자리일 뿐이다.

건강오락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던 2000년대 초반 의학 관련 학술지에 <티브이 오락 프로그램의 건강 정보 실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라는 보고서가 실린 적 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시청자 설문 결과 사람들은 건강에 대한 관심보다는 재미와 함께 정보를 얻기 위해 건강오락 프로그램을 접하는 경우가 많다고 답했다고 한다. 더불어 “단순하고 교훈적이기보다는 자극적이고, 참신하고, 극적이며 유머러스한 형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고 썼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이들 프로그램이 시청률은 높지만 건강에 대해 얻은 정보를 시청자가 실생활에서 실천하는 비율은 상당히 낮다는 것이었다. 1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비슷한 맥락으로 건강오락 프로그램을 소비하고 있는 것 아닐까. 이제 더 이상 남의 사연과 누군가의 조언을 듣는 대신 티브이를 끄고 내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에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이는 편이 건강을 찾는 더 빠른 길일지도. 신소윤 <한겨레21>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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