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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9회말 역전…“미치겠네” “쪽대본 빨리빨리”…전쟁터였다

등록 2013-04-29 20:13

야구매거진 KBS N ‘아이러브 베이스볼’ 피말리는 생방송 현장
봄 내음이 싱그럽다. 스튜디오 벽이 꽃과 식물로 꽉 차 있다. 이곳에서 팔딱팔딱 뛰는 생방송 야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이 탄생한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다’는 야구장 밖 제2의 전쟁터,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제작 현장을 26일 찾았다. <아이러브베이스볼>은 <케이비에스 엔>(KBS N)이 2009년 방송 사상 최초로 선보인 야구 매거진 프로그램이다. 이날은 시즌 첫 공개방송일이기도 했다.

① 작가 4명이 벽에 걸린 텔레비전 4대와 피시를 분주히 번갈아보며 대본을 준비중이다. 한쪽 귀에 이어폰을 끼고 기록지를 작성하는 동시에 원고도 쓴다. 한쪽 끝에는 컴퓨터그래픽과 기록을 담당하는 안상준씨가 있다. 진행자 최희 아나운서와 이용철 해설위원도 자리를 잡았다. 4개 구장 모두 4회까지 1~2점 차 박빙의 승부. 한 작가는 “폭풍전야 같다”고 했다. 11년차 메인 작가 이지혜씨는 “4개 구장 경기가 다 끝난 뒤 프로그램을 시작하면 괜찮기는 한데 (타사 프로그램보다 늦게 시작하면) 시청률에 영향을 주니까 꼭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② 제작 피디 3명이 열심히 3개 구장 경기 화면을 편집중이다. 3~4분에 한 번씩 가위질이 들어간다. <케이비에스 엔>중계 경기는 따로 편집기에 맡긴다. 네 경기 하이라이트가 모두 같은 분량으로 방송되지는 않는다. 강의권 피디는 “기아, 롯데 경기는 시청률이 높고, 최근에는 1승에 대한 관심 때문인지 엔씨, 한화 경기도 시청률이 높게 나왔다. 두산과 넥센, 에스케이는 의외로 시청률이 안 나오는 편”이라고 했다. 방송 큐시트에는 ‘삼성-기아(6분), 롯데-엘지(6분), 두산-엔씨(5분), 한화-에스케이(4분)’이라고 써있었다. 프로야구 중계 채널들은 돌아가면서 1~4순위로 무슨 경기를 중계할지 결정권을 갖는데, 하이라이트 방송 분량에는 1분씩이라도 인기 경기의 순위가 드러난다.

③ 아나운서 3명이 방을 하나씩 잡아 상황을 기록하며 하이라이트 중계를 연습한다. 간판 코너인 ‘미스 앤 나이스’는 김기호 피디와 김기웅 아나운서가 착 달라붙어 따로 편집한다. ‘깨알 자막’도 둘의 머릿속에서 나온다. 자막 넣는 시간이 필요해 보통 7~8회에서 끊는다. 하이라이트나 ‘미스 앤 나이스’는 미리 녹화될까? 아니다. 이 또한 ‘라이브 목소리’로 진행된다.

④ <케이비에스 엔>이 중계한 문학구장 경기가 끝났다. 강 피디는 고민 끝에 감독과 수훈 선수 인터뷰를 생략한다. 이날 핵심 경기라 할 수 있는 삼성-기아전(광주구장)이 9회 초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강 피디는 “감독이 인터뷰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3사의 경쟁 프로그램보다 빨리 시작할 필요가 있을 때 인터뷰 없이 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까지 <아이러브베이스볼>은 밤 11시에 고정적으로 방송됐으나 올해부터 경쟁 프로그램들처럼 경기 중계 뒤 곧바로 전파를 탄다. 강 피디는 타사가 중계한 광주구장 경기 뒤 곧바로 시작하려고 20여분을 끌었으나 계획은 빗나갔다. 광주구장 중계를 한 <엠비시 스포츠 플러스>가 <베이스볼 투나잇 야>를 먼저 시작해 선수를 친 것이다. <아이러브베이스볼>은 2~3분 뒤처졌다. 작전 실패다. 시청층이 두터운 기아·롯데의 경기일수록 방송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

⑤ 방청객들과의 리허설이 끝난 뒤 방송이 시작됐다. 아직 2개 구장 경기는 진행중이다. 하이라이트 첫 테이프는 광주구장이다. 하이라이트 화면으로 넘어가자 스튜디오는 더 긴박해졌다. 마산 경기가 동점으로 9회 초로 막 들어가는 상황이다. 어디선가 “미치겠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쪽대본’이 2층 에이(A) 부조정실에서 계속 낚싯줄을 타고 스튜디오로 내려왔다. 급하면 던질 수도 있지만 대본이 흩어질까봐 낚싯줄을 쓴다.

⑥ ‘쪽대본’을 보던 최희 아나운서가 소리쳤다. “잠실, 엘지가 이긴 거 아니에요?” 뒤지던 엘지가 9회 말 역전 끝내기 안타를 친 것이다. “수정 대본 내려올 거예요.” 작가들은 경기가 길어지면 승·패·무승부 3개 시나리오를 준비하는데, 롯데가 이긴 시나리오가 전달된 것이다. 5분 뒤 수정 대본이 왔다. “빨리 보내줘야지!” 이용철 해설위원의 목소리가 날카롭다. 수정 대본은 계속해서 내려왔다. 밤 10시24분, 드디어 마지막 대본이 낚싯줄에 매달렸다. 경기 결과는 최희 아나운서가 그냥 텔레비전 화면을 보고 읽었다. 클로징 멘트가 나가자, 신민정 피디가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다”고 혀를 내누르던 박혜령 작가는 밤 11시가 되지 않은 시간을 보고 놀란다. 전날에는 마산구장이 연장전에 들어가는 바람에 100분간 방송했다. 프로그램을 중간에 끊을 수도 없어 최희 아나운서와 이용철 해설위원은 없던 질문까지 만들어 대화를 이어갔다. 경기 상황에 따라 길면 2시간 진행할 때도 있다. 강의권 피디의 표정이 썩 좋지 않다. 계획대로 안 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얼굴 한편에 ‘또 하루가 지났다’는 표정이 스친다. 프로그램에 투입되는 인원은 30여명이다. 프로야구 시즌 내내 이들은 계속 ‘밤의 전쟁’을 치른다. 다음날(27일) 아침 일찍, 강 피디는 스마트폰으로 시청률을 확인했다. 시청률이 <베이스볼 워너비>(XTM)에는 앞섰지만, <베이스볼 투나잇 야>와 <베이스볼 에스>(에스비에스 이에스피엔)에는 뒤졌다. 그는 오늘 전쟁은 어제보다 치열할 것임을 예감한다.

글·사진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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