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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과거를 되돌린다고 행복해질까

등록 2013-05-03 19:17수정 2013-07-15 15:54

드라마 <나인>(tvN)
드라마 <나인>(tvN)
[토요판]신소윤의 소소한 TV
지나고 나면 그때였음을 알게 되리라고 했다. 생이 끝나더라도 꼭 붙들고 싶었던 무언가를 잃게 되었을 때, 우리는 지난 그 시점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더라면, 다른 판단을 할 수 있었더라면 우리는 사랑을, 사람을 잃지 않을 수 있었을까. 비틀어진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었을까. 여기 20년 전 어느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9번의 기회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각각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 지금 맞닥뜨린 사소하거나 혹은 거대한 불행의 씨앗을 제거할 수 있을까.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드라마 <나인>(tvN)에서 주인공 선우(이진욱)에게도 누구나 그렇듯 바꾸고 싶은 과거가 있다. 선우보다 먼저 과거에 집착하며 “모두가 행복했던 그때”로 돌아가기 위해 실성한 사람처럼 히말라야를 헤매다 동사한 형(정우)의 뒤를 쫓던 선우는 형이 찾던, 과거로 돌아가는 9개의 향을 손에 넣는다. 그리고 가능해진 9번의 시간여행. 선우는 선량한 의지로 형이 바꾸려고 했던 과거로 되돌아간다. 20년 전 그때로 돌아가 아버지를 살린다면, 어머니가 정신을 놓고 병원에 들어갈 일도 생기지 않을 테고, 형이 히말라야를 헤매다 죽게 되는 일도 생기지 않게 되리라. 아버지의 동료 최진철(정동환)이 저지른 악행의 증거들을 찾아낸다면 현재의 자신을 옥죄던 모든 고뇌로부터 탈출하게 되리라.

그런 ‘판타지’를 가지고 ‘팩트’를 수정하려 했던 선우는 막상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자 자신이 생각했던 과거와 전혀 다른 세계를 맞닥뜨리게 된다.

선우는 아버지의 죽음에 형이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었다는 진실을 직면하고, 최진철이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저지른 일의 증거와 마주했다. 게다가 노력이 무상하게 아버지와 형은 각자 자기의 운명에 따라 결국은 죽음을 맞게 된다. 시간과 공간만 달라졌을 뿐. 설상가상 바뀐 과거로 인해 연인인 민영(조윤희)과의 관계도 삼촌-조카로 엮여, 사랑하는 사람마저 잃어버렸다.

과거로의 회귀로 20년 후 미래의 불행이 다른 방식으로 층층이 쌓인 셈이다. 좀더 행복해지기 위해 과거로 돌아갔지만 미처 몰랐던 과거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선우는 더 큰 고통에 직면할 뿐이었다. 과거는 수습하려 하면 할수록 복잡하게 뒤엉킬 뿐이고, 그 상태로 중첩된 시간들은 현재를 더욱 고단하게 만들었다. 선우가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여러 인물들이 제각각 자기들의 역사를 써나가는 가운데 삶은 선우의 의지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움직여왔던 것이다.

드라마 초반 나에게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좋겠다 생각하며 여러가지를 상상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이라면 겨우 초등학생이었을 나는 어떤 상실도 삶의 고단함도 느끼지 않았던 것 같은데….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말했듯, 모두가 행복했(다고 생각되)던 그때 같기만 하다면. 그래서 그 시점으로 돌아가 나에게 혹은 나의 친구와 가족들에게 다가올 생의 고난을 미리 막으라 얘기할 수 있다면 나는 지금 더 행복할 수 있을까.

하지만 드라마를 지켜보면서 판타지는 점점 옅어졌다. 드라마 속에서 지워버리려고 했던 불행은 결국 변하지 않는 사실이 되어 나타났고, 소멸되었던 과거의 기억은 진실을 확인할수록 오히려 고통스러운 것이 되어 돌아왔기 때문이다. 선우는 20년 전 그 시점으로만 돌아가면 뒤엉킨 실타래가 풀릴 것이라 기대했지만 우리 삶은 더 오래된 시간, 더 오래된 인연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행과 불행의 역사를 촘촘하게 써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쨌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알량한 욕심과 삶의 복잡다단함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무지몽매했던 시청자로서 다시 드라마로 돌아와 혼자 쓰는 다음주의 예고. 선우와 반대 지점에 서 있는 최진철이 향의 비밀을 알고 과거로 돌아가 어린 선우의 살인을 사주했지만 드라마를 지켜보는 우리는 안다. 과거의 어느 지점 혹은 누군가만 지워버린다고 삶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는 않으리란 것을.

<한겨레21>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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