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방송·연예

뻔히 알지만 빠져든다, 상투적 로맨스

등록 2013-05-17 19:13수정 2013-07-15 15:01

<남자가 사랑할 때>(MBC)
<남자가 사랑할 때>(MBC)
[토요판]신소윤의 소소한 TV
<남자가 사랑할 때>(MBC)는 괴상한 드라마다. 복잡한 가족 관계를 배경으로 자극적인 상황들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한국형 막장 드라마의 공식을 따르진 않지만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들과 상황이 이어짐에도 이상하게 계속 보게 된다.

미도(신세경)는 가난한 집 딸이다. 아버지는 동네 귀퉁이에서 헌책방을 운영한다. 이전에는 외국 전문서적을 수입하는 사업을 했지만 실패했다. 아버지는 착하고 꼿꼿한 심성 덕에 애초에 부와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미도는 가난이 너무 싫다. 스스로 속물이라 생각하는 미도는 좋은 옷을 입고 좋은 곳에 가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하다. 유학을 가서 공연 전시 기획자가 되어 돌아오고 싶지만 현실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안다. 태상(송승헌)은 어린 시절 가족사에 휘말려 사채업자들과 대립하고 이 과정에서 조직에 몸담게 됐다. 학교에서 인정받는 수재였지만 폭력조직의 2인자로 성장한다. 우여곡절 끝에 보스를 제거하고 대부업과 문화사업으로 자수성가한다. 미도와의 인연은 태상이 폭력조직에 있을 때 미도 아버지가 끌어다 쓴 사채 이자를 받으러 가서 난동을 부린 날부터 시작한다. 태상은 자신의 어린 시절과 꼭 닮은 미도에게 한눈에 반했다.

재희(연우진)는 태상의 오른팔 창희의 동생으로 태상의 후원을 받아 미국 명문대 엠비에이(MBA)를 마쳤다. 미도와의 인연은 고등학교 시절 구청에서 나눠주는 쌀을 받으러 갔을 때 시작됐다. 가난에 어울리지 않는 미도의 태도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잊고 지내다 괌 여행에서 우연히 만나 결국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제각각 관계를 형성한 다음 세 사람 모두 태상의 회사에 모였다. 미도와 재희는 태상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 미도는 태상이 고맙고도 무섭다. 태상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의아하고 부담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점점 좋아지기도 한다. 재희는 태상이 후원해준 것을 갚고 자유로워지고 싶다. 사회적 성공을 추구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사람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따뜻하게 살아가는 것이 삶의 목표다.

어딘가 익숙하다 했더니 어릴 적 몰래 보던 해적판 일본 로맨스 만화의 구성과 비슷하다. 두 남자 사이에서 방황하는 여자, 무서운 추진력을 가지고 사회적 성공을 했지만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는 늘 서툴고 어린아이 같아지는 남자, 감성적이고 여자의 마음을 세심하게 살필 줄 아는 남자. 후자의 남성은 여자 주인공에게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구애한다. 세상에 여자 주인공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는 투로. 마치 로맨스 만화의 역사가 시작될 때부터 있었음 직한 상투적인 구성이지만 우리는 안다, 이런 익숙함이 결국 우리를 빠져들게 한다는 것을.

현실이었다면 모든 캐릭터가 왜곡되어 있음을 한눈에 인지하겠지만 드라마에 빠져들다 보면 우리는 제각각 자신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캐릭터에 깊은 공감을 하게 된다. 예컨대 이런 식. 현실이었다면 재희는 끊임없이 남의 애인에게 구애를 하는 이상한 남자다. 미도의 연인이 태상임을 알게 된 뒤 “애인이 태상이 형인 줄은 몰랐다”며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바보야 문제는 태상이 아니잖아. 태상은 미도에게 감정적으로 물질적으로 언제나 전폭적 지지를 하는 남자다. 그러나 한편으론 미도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늘 자기 곁에 두려는 폭력성을 내포한 인물이다. 미도는 두 남자 누구에게도 거짓말하지 않지만, 사실 이들이 굳이 묻지 않는 것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이중적인 감정을 은폐하고 있다. 그러나 티브이 앞에 앉은 누군가에게 재희는 미도에게 진정한 사랑을 알려주려는 자로서, 태상은 지고지순한 순정남으로 이해된다. 미도가 태상에게 가지는 미안함과 두려움과 고마움, 재희에게 기대하는 소박한 애정과 같은 두 갈래의 감정이란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현실을 극적으로 비틀거나 재현한 드라마에 우리가 빠져드는 이유 아닐까. 누구에게나 있는 양면성을 우리는 왜곡된 캐릭터에 공감하는 과정을 통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셋 중 적어도 한명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 안에서 우리는 누구를 응원하게 될까. 아마도 결국은 자신과 가장 닮은 인물을 지지하게 되지 않을까.

<한겨레21>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단독]‘성추행 혐의’ 윤창중 곧 미국 경찰에 출두할 듯
기생충학자 서민 “못생겼다고 아버지도 나를 미워했지만…”
이 정부의 ‘귀태’? 그건 국정원입니다
미 아이비리그 여대생들의 ‘신 성풍속도’
[화보] ‘그때 그시절’ 경복궁에서 있었던 별의별 일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