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집행부와 김민선씨·안재욱씨 등이 기자회견을 열어 이른바 ‘연예계 X파일 사건’ 과 과련해 입장을 맑히고 있다. 김정효 기자.
매니저-기획사-피디 등 먹이사슬 위계관계 인식
고정관념 강화하게끔 해 사실 아니라 해도 안믿어 법정 소송으로 번진 ‘연예인 엑스파일’ 파문에서 법적 책임 공방과 별도로 가장 관심을 끄는 대목의 하나는 ‘엑스파일’ 내용의 진위를 둔 한국사회 성원들의 날카로운 대립 구도다. 피해 당사자인 연예인들은 이를 ‘허위 신상정보 유출’이라고 부르며 일말의 진실성조차 담지 못한 풍문의 종합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다. 반면, 인터넷으로 내용을 접한 네티즌들의 상당수는 “‘엑스파일’의 내용 대부분이 사실일 것”이라고 믿는 분위기다. 여러 인터넷 포털의 관련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의 상당수는 “이번 기회에 연예인들도 사생활 관리 좀 하라”(gaius)거나 “과연 소문일 뿐일까. 왜 그런 소문이 도는지는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biar79) 같은 의혹제기성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반응은 여러 이유들에서 비롯된다. 여러 스캔들을 명망있는 한국 최대 광고회사의 이름으로 집대성했다는 점, ‘광고모델 디비 구축을 위한 사외전문가 뎁스 인터뷰 결과 보고서’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가진 문건으로 제시됐다는 점 따위가 ‘엑스파일’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엑스파일’이 연예계에 대한 한국사회 성원들의 보편적 인식틀을 차용 내지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드라마 피디는 “‘엑스파일’은 연예계에 대한 일반인들의 정서에 잘 들어맞는 내용들로 이뤄져 있다”며 “이 때문에 연예인들이 ‘허위’라고 해도 보통 사람들은 ‘사실 아니냐’고 반응하게 된다”고 바라봤다. ‘엑스파일’이 일반적 고정관념을 확인하고 강화하는 보편성 있는 담론들로 구성돼있으며, 이때문에 사실 여부를 떠나 상당수 한국인들에게 연예계를 상상하고 이해할 때 필요한 인식의 지도 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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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파일’에서 가장 뚜렷한 윤곽을 드러내는 관념은 연예계의 위계와 관련된 것이다. ‘엑스파일’에 담긴 풍문들은 거의가 연예계에서 연예인과 다른 주체들이 차지하는 위상에 대한 단편적 언급들을 담고 있다. 이 위계에서 가장 아래 쪽에 자리잡은 이들은 매니저다. ‘매니저를 잘 때린다’는 어느 한류스타에 관한 소문이나 ‘매니저에게 용돈도 잘 안주는 짠돌이’라는 어느 유명 탤런트에 대한 평가 등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규모가 큰 연예기획사와 스타의 관계는 또 다르다. 일부 연예기획사 대표들은 스타와의 연애설의 주도적 주체로 묘사된다. 한 피디는 “피디들에겐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요구되지만, 업계 사람들에겐 그 강도가 약한 편 아니냐”고 했다. 물론 ‘엑스파일’에선 일부 피디들과 연예인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에 관한 소문도 일부 포함하고 있어, 피디들 또한 연예계 ‘먹이사슬’에서의 위계가 결코 낮지 않다는 세간의 인식을 반영한다. ‘엑스파일’이 보여주는 위계의 정점엔 ‘재벌2세’로 지칭되는 광고주나 ‘스폰서’로 일컬어지는 일군의 재력가 집단이 있다. 사생활 소문은 대개 연예인과 이들 사이 ‘성적 매력’과 ‘재력’의 교환관계로 그려지고 있다.
남녀 성별에 따른 사회적 인식의 차별점도 드러난다. ‘성’ 관련 풍문의 경우, 남성보다는 여성 연예인이 훨씬 많이 등장한다. 여성연예인이 관련된 성적 스캔들이 잦았던 연예계 배경과 여성연예인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광범한 사회적 시선의 반영인 셈이다. ‘믿거나 말거나’의 소문집에 불과한 ‘엑스파일’이 의심없이 유통되는 사회적 인식구조의 전환과 더불어, 그 배경이 된 지금의 연예계 풍토에도 자성이 필요하다는 지적들이 나오는 까닭이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X파일 확장자는? 황색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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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거나 말거나’ 보도 확대재생산 우선 연예계 풍문은 대개 연예인들과 밀착해 살아가는 매니저와 스포츠지 기자와의 만남에서 ‘혼령’을 얻는다. 연예인을 항상 따라다니며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는 매니저들은 자신들이 직접 목격했거나 다른 매니저, 연예인 혹은 다른 연예 기자들한테서 들은 이야기들을 술자리 ‘뒷담화’ 등을 통해 또 다른 연예 기자와 나눈다. 연예 기자들은 자신들끼리의 커뮤니티에서 소문들을 공유하고 서로 확인하는 작업을 거친다. 스포츠신문에선 이런 내용들을 ‘정보보고’ 식으로 다루고, ‘A가 정관계 거물 B의 아이를 낳았다’거나 ‘C와 D가 동거를 하고 있다’ ‘E의 술버릇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식으로 이름을 가리고 기사화하면서 연예계 소문은 ‘믿거나 말거나’ 확대 재생산된다. 기사의 의미와 무관하게 눈에 띄어 많이 읽히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상업적 연예뉴스의 본질인 탓이다. 이 과정에서 ‘뜬소문과 팩트의 경계’는 모호해지기도 하는데, 이는 사실 여부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 연예인들을 목격한 현장을 ‘디카’로 찍은 사진이나 글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면서 뜬소문이 자체 확인되는 흔치 않은 일도 간혹 벌어진다. 매니저와 연예 기자의 만남에서 비롯된 연예가 뒷소문들은 다시 광고계로 돌아온다. 주요 광고모델로 연예인들이 활약하면서, 이들의 스캔들이 광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광고계가 연예인 소문에 민감한 까닭이다. 적당한 스캔들은 연예인의 입지에 필수적이라는 것이 연예계 정설이면서도, 어떤 선을 넘어선 스캔들은 다시 연예인들을 그들의 주수입원인 광고모델에서 탈락시키는 독특한 구조가 만들어진다. 실제로 특정 스캔들에 연루된 연예인이 광고모델에서 탈락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결국 스포츠신문의 황색 연예저널리즘이 ‘엑스파일’의 핵심에 있다. 요즘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발달과 연예산업의 폭발적 성장이 낳은 사생아인 ‘인터넷 연예뉴스’가 우후죽순 난립하면서 이들 또한 이른바 연예가 뒷소식에 막대한 구실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인터넷 연예뉴스 기자들이 무료신문 등 때문에 경영난에 빠진 스포츠신문에서 자리를 옮긴 이들이라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도 적지 않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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