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응수(52)
명품 악역배우 김응수의 쓴소리
‘빠스껫볼’서 또 욕망의 화신 연기
33년째 무대 오르지만 늘 두려워
“악역은 나중을 위한 축적과정…
늘 현장의 낮은 곳에 있고 싶다”
‘빠스껫볼’서 또 욕망의 화신 연기
33년째 무대 오르지만 늘 두려워
“악역은 나중을 위한 축적과정…
늘 현장의 낮은 곳에 있고 싶다”
<추노>(2010년)의 좌의정 이경식, <해를 품은 달>의 이조판서 윤대형과 <닥터 진>(이상 2012년)의 좌의정 김병희. 영화까지 아우르면 <타짜>(2006년)의 조폭 두목 곽철용까지 있다. 이들은 모두 끊임없이 돈과 권력을 탐하는 욕망의 화신이었다. 그리고 단 한 사람, 김응수(52·사진)가 연기했다. <티브이엔>(tvN) 월화극 <빠스껫볼>에서도 그는 ‘최제국’이라는 일제강점기 악질 자본가의 옷을 입었다. 최제국은 권력에 눈이 멀어 아들을 일본군에 입대시키고 딸의 정략결혼을 추진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다.
최근 서울 상암동 한 커피숍에서 만난 김응수는 “최제국을 이해한다”고 했다. 전체 24부 가운데 16부까지 대본이 나온 상태에서 촬영에 들어가 캐릭터를 분석할 시간이 충분했을 그는 역시 최제국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은 것 같았다. “최제국 입장에서 보면 그가 하는 일은 지극히 선이고, 당연한 선택인지도 모른다. 피지배국의 자본가가 돈을 축적하는 것은 용납되기 어려운 일이었고, 한 회사의 수장으로서 3000여명의 조선인을 먹여 살리려면 친일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기업 간 정략결혼도 현재의 대기업들이 으레 하고 있는 일 아닌가.” <빠스껫볼>에서 최제국은 “살아남기 위해” 지속적으로 지배 권력에 빌붙는다. 그 대상이 일제든 미군정이든 상관없다. 그 때문에 김응수는 “시대의 아픔은 최제국에게도 있다”고 말한다.
<빠스껫볼> 곽정환 피디와는 벌써 네번째 만남이다. 곽 피디의 장편 데뷔작인 <한성별곡 정>(2007년)부터 시작해 <추노> <도망자 플랜비>(2010년)에서도 함께 일했다. 공교롭게도 맡은 배역이 대부분 악랄했다. “촬영 현장에서 애드리브로 주변 사람들을 웃기는 모습을 보고 곽 피디가 나중에 시트콤 주인공을 시켜주겠다고 약속했었다. 지난해 11월 곽 피디와 만났을 때 ‘시트콤 주인공 시켜주나 보다’ 했는데, 이야기 줄거리를 듣다 보니 딱 ‘최제국 역이구나’ 생각했다.” 계속 악역을 맡지만 곽 피디 작품에 출연하는 이유는 “곽 피디가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주 따뜻하기 때문”이다. 김응수는 “<빠스껫볼> 출연을 위해 섭외가 왔던 두 작품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아빠의 거듭된 악역 연기에 <붕어빵>(에스비에스)에 함께 출연하는 막내딸 은서(11)가 싫어하지는 않을까? 김응수는 “<해를 품은 달> 때는 은서가 상처를 받기도 했는데 이젠 주위에서 그런 얘기를 하면 ‘우리 아빠 연기 잘하잖아요’라고 말한다. 요즘은 내성이 생겼는지 드라마도 편안하게 보고, 포스터 분장만 보고도 ‘아빠, 이번에 또 악역이구나’ 한다.” <붕어빵> 출연은 첫 녹화 뒤 그만둘까도 했는데 은서와 함께하며 소통할 수 있는 5시간의 녹화 시간이 소중해서 계속 나오고 있다.
김응수는 1981년 서울예대 1학년 때부터 연극 무대에 섰다. 졸업 뒤 극단 목화의 단원으로 활동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6년 넘게 새벽에 신문을 돌리며 영화 연출을 공부했다. 일본에서도 연극에 출연해 아직도 현지 팬클럽이 있다. 연극 무대에서 잔뼈가 굵었지만, 아직도 무대에 서면 손 처리가 어색해 손을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로 두렵고 무서울 때가 있단다. 그래서 너무 쉽게 연기하려는 후배들이 못마땅할 때도 더러 있다. “신인 연기자들이 기본기 없이 데뷔하다 보니 극 흐름에 따라 연기를 잘 못하고 대사 전달의 방법이 잘못될 때도 있다. <빠스껫볼>에서 딸로 나오는 이엘리야에게도 ‘연기는 일상을 갖고 와서는 안 된다. 일상적인 것을 버리고 극적인 것을 해라’라고 종종 조언해준다. 후배들에게도 ‘스타가 아닌 배우가 되라’고 말한다.” 그는 괜찮은 신인급 연기자로 <해를 품은 달>의 김수현을 꼽았다. “연기 기초가 돼 있어서 어디서 끊어 읽을지, 어떤 말을 강조할지 알더라”라는 게 그 이유다.
그는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거나 연기가 안 풀릴 때면 늘 영화 <대부> 1~3부 무삭제판을 본다”고 했다. 그에게 <대부>는 연기 텍스트요 영원한 선생님이나 다름없다. 바라는 역은 짧게 보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착한 권력가”, 길게 보면 “최불암 선배를 잇는 대한민국 아버지”다. “현재의 악역은 나중을 위한 축적 과정”으로 생각한다. 그가 생각하는 연기론은 무엇일까.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 한 ‘국민 타자’ 이승엽도 2할밖에 못 칠 때가 있다. 하지만 2할이라도 치기 위해서는 먼저 타석에 서야만 한다. 연기도 마찬가지다. 극에서 작은 역할은 없고, 역할 앞에서 작아지는 연기자만 있을 뿐이다. 늘 현장에서 가장 낮은 곳, 밑에 있고 싶다.”
글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사진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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