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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반론 자막으로 막내린 ‘5공화국’

등록 2005-09-14 20:18수정 2005-09-15 14:13

이야기TV
소격효과는 ‘낯설게 하기’라는 말로 풀어쓰기도 한다.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제안한 연극 기법이다.

고대 그리스 이래, 전통적인 연극 기법은 관객이 연극에 몰입하도록 만들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브레히트는 연극에 몰입된 상태에서 관객들은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태도가 불가능해진다고 보았다. 그는 낯설게 하기를 통해 거리감을 갖고 연극을 보게 되면 결말보다 왜 그런 결말이 나타나는지를 입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된다고 여겼다. 또 비판적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 볼 수 있게 된다고 믿었다.

굳이 연극기법에 기대지 않더라도, 지난 11일 41회로 막을 내린 문화방송 특별기획드라마 <제5공화국>은 기존 사극이나 역사 드라마와는 다른 ‘낯설게 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제5공화국>은 시청률에선 같은 시간대의 <불멸의 이순신>에 밀렸지만, <불멸…> 보다 도드라진 점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시각을 많이 담았다는 점에서다. <불멸…>에선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면을 좀 더 강조하다 보니, 그 시대 민초들의 삶과 저항은 단편적으로 보여주는데 그쳤다.

반면 <제5공화국>은 5·18 광주항쟁과 삼청교육대 피해자들 등 독재권력에 희생된 피해자들의 눈에 비친 독재권력의 부도덕성을 드러내 보였다. 광주항쟁 때 같은 나라 군인한테서 총을 받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숨진 자동차 수리공은 너무나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삼청교육대로 징집된 고교생, 그는 가정 형편이 불우해 잡아가도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에 끌려갔어야 했다. 이들은 신군부의 권력유지를 위한 획책에 희생된 우리 이웃의 아저씨, 학생이었다.

<제5공화국>은 또 줄거리가 주는 결과보다 원인과 배경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보게 했다. 12·12가 쿠데타로 진행되는 과정을 드러내 보였고, 5·18 광주민중항쟁을 신군부 세력들이 어떻게 이용했는지도 드러냈다. 언론통폐합과 언론통제를 통해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사실을 어떻게 왜곡했는지도 짚어봤다.

이 드라마의 또 하나 특징은,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드라마에 몰입한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다. 그것도 많은 수가 집단적으로. 이것 또한 낯선 못습이었다.

이들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란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허화평·장세동 등 5공 인사들은 방송시작을 앞둔 4월 12·12와 관련한 장면이 사실과 다르다며 대본 수정을 요구하는 등 세 차례 대본 수정과 정정을 요구했다. 박철언 전 의원도 ‘수지 김 간첩 조작’ 사건과 관련해 허위 사실을 방송해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문화방송 제작진을 상대로 1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제5공화국>은 마지막회 방송에서 이들의 반론 내용을 자막으로 알리며 끝을 맺었다. 이를 본 누리꾼 ‘정지은’씨는 게시판에 “마지막 화면에 그들이 제기한 거의 모든 회에 걸친 반론내용을 보면서… 씁쓸한 웃음이 나오는 건 왜 일까요?”라는 글을 올렸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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