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라는 유행어의 탄생 과정은 참 특이하다. 갑자기 튀어나온 말이 아니라 김보성(사진)이 무명배우일 때부터 입버릇처럼 해온 대사이기 때문이다.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김보성을 패러디할 때 자주 인용한 대사에 ‘의리’가 있었는데 이 웃음코드가 광고에 쓰이고, 광고 속의 대사가 또 수없이 패러디되면서 그야말로 의리 열풍이 으리으리하게 불었다. 세월호 사건 이후 믿음이 절실했던 때와 맞물려서일까? ‘의리’라는 말은 올 상반기 최고의 명대사이자 유행어였음이 분명하다.
거의 20년을 거슬러 올라가서, 1996년 6월15일치 <경향신문>을 보자. 영화 <투캅스 2>로 스타덤에 오른 김보성의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다. 한 면을 꽉 채운 인터뷰 기사는 김보성의 말로 시작한다.
“장총찬이 되고 싶었다. 김홍신 소설 <인간시장>의 주인공. 정의와 의리를 위해 죽고 사는 진짜 사나이. 그래서 어려서부터 태권도를 익히고 권투도 배웠다.”
하. 이때부터 의리 타령이다. 정말 ‘의리’에 대한 ‘의리’부터가 으리으리하다.
훈훈한 탄생 비화에 온통 긍정적인 이미지밖에 없던 유행어 ‘의리’가 예상치 못한 역풍을 맞는다. 월드컵, 그리고 홍명보 때문이다. 대표팀 감독을 맡은 홍명보가 내세운 선수 선발 원칙은 이랬다. “소속팀에서 뛰지 않는 선수는 선발하지 않는다.”
대표팀으로 호흡을 맞출 기회가 많지 않기에 선수 본인이 소속된 소속팀에서의 활동을 선발 판단의 근거로 삼겠다는 말이다. 이 얼마나 쉽고 명확한 원칙인가? 이 원칙을 천명할 때만 해도 홍명보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대단했다. 그 신뢰를 바탕으로 홍명보 감독은 광고도 찍고 돈도 많이 벌었다.
그런데 이른바 ‘홍명보 키즈’들을 선발하면서 홍명보는 자신이 만든 원칙을 스스로 깨버렸다. 특히 대표팀 스트라이커로 박주영을 내세우면서 조각난 원칙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모두 잘 아는바.
경기는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 영원한 우승 후보 브라질도 7골이나 먹을 수 있는 것이 축구다. 졸전의 책임을 모조리 감독에게 돌리는 것도 지나치게 감정적인 처사다. 그러나 적어도 원칙을 깨면서까지 무리수를 둔 이상, 그 지점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지고 넘어가야 한다. 원칙을 깬 뒤의 결과가 좋다고 해도 찜찜할 터인데, 결과까지 최악이라니.
이처럼 국민의 기대를 처참하게 부숴버린 홍명보호의 실패를 논하면서 누군가 의리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실력이 아닌 의리로 선수들을 경기에 기용한 것이 패배의 주요 원인이라는 뜻. 그 뒤로 ‘의리 축구’라는 말은 ‘홍명보 축구’와 동의어로 둔갑해 언론을 도배했다.
유행어도 사람이라고 친다면 의리라는 친구에게 너무나도 억울하고 가혹한 일이 벌어졌다. 월드컵 직전만 해도 최고의 인기남이었던 의리는 졸지에 원칙을 깨뜨리는 녀석,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녀석으로 낙인찍혔다. 전혀 상관도 없는 축구 감독 때문에 국가적 지탄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홍명보, 박주영, 정성룡…. 한때 영웅이었던 그들의 몰락은 안타깝지만 그들이 자초한 일이다. 그들은 프로니까. 국민의 사랑과 기대를 대가로 남들이 누리지 못하는 부와 인기를 누려온 국가대표니까! 홍명보 감독만 해도 국민의 피땀 어린 세금으로 높은 연봉을 받았다. 불철주야 똑같은 표정은 또 얼마나 원칙주의자 같은가? 원칙주의자라는 이미지를 앞세워 광고도 찍었다. 국민과의 신뢰를 담보로 말이다. 그러니 국민의 기대를 짓밟은 결과 앞에서 통렬하게 사과함이 마땅하다. 통렬한 사과가 뭔지 잘 모르겠다면 고승덕 전 의원의 ‘미안하다!’ 영상을 참고하기를. 하지만 의리가 무슨 죄냐?
홍명보 감독은 국민에게 사과하느라 바쁠 테니 대신 내가 의리에게 통렬히 사과하겠다. 의리야, 미안하다! 때를 잘못 만나 단명한 불쌍한 유행어여, 안녕.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