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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그래도 낙타는 도망가지 않아

등록 2014-08-28 19:37수정 2015-05-26 10:37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의 한 장면.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의 한 장면.
[이재익의 명대사 열전]
“사막에서는 밤에 낙타를 나무에 묶어 둬. 그러고는 아침에 끈을 풀어놓지. 그래도 낙타는 도망가지 않아. 묶여 있던 지난밤을 기억하거든.” - <괜찮아, 사랑이야> 6회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쪽의 공식적인 소개글은 다음과 같다.

‘작은 외상에는 병적으로 집착하며 호들갑을 떨지만 마음의 병은 짊어지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과 사랑을 되짚어보는 이야기.’

이런 기획의도에 맞게 드라마의 남자주인공은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장재열(조인성)이고, 여주인공은 정신과 의사 지해수(공효진)다. 사랑을 통해 인물들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성장을 경험한다는 멜로드라마의 기본 공식에 충실하다 못해 정신과 의사와 환자 관계를 통해 이를 노골적으로 내세웠다.

드라마 6회에서 재열은 이런 말을 한다.

“사막에서는 밤에 낙타를 나무에 묶어 둬. 그러고는 아침에 끈을 풀어놓지. 그래도 낙타는 도망가지 않아. 묶여 있던 지난밤을 기억하거든. 우리가 지나간 상처를 기억하듯 과거의 상처가 현재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는 얘기지.”

사막의 낙타뿐이 아니다. 육체의 상처가 후유증을 남기는 것처럼 마음의 상처도 후유증을 남긴다. 보이지 않을 뿐 우리의 말과 행동에 영향을 주고, 무엇보다 행복을 느끼는 과정에서 걸림돌이 된다. 실연, 실직, 막말, 갈등…. 수많은 관계 속에서 받는 우리의 상처가 엉킨 실타래처럼 하루하루 우리를 휘감고 행복으로 가는 발목을 잡는다.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10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단다. 그러면서도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이 되는 우울증 치료는 오히려 평균도 안 된다고 한다. 정신과 상담을 받는 사실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정신과의 문턱을 높게 만들고 있다.

화가 난다고, 외롭다고, 억울하다고 왜 얘기를 못 하나? 몸이 아픈 것이 죄가 아닌 것처럼 마음이 아픈 것도 죄가 아니다.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 병원에 가기 전에 가족과 친구, 동료를 통해 다친 마음이 치유되면 돈도 안 들고 좋겠지만 그들은 의사가 아니다. 아무나 종양 제거 수술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아무나 우울증을 고칠 수 없다. 극단적인 표현으로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주저 없이 정신과 병원을 찾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개인사뿐 아니라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 때문에도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퍼져 있는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이 대표적이다. 물론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아픔과는 감히 비교할 수도 없겠으나 감정이입으로 입는 내상도 사람에 따라 위험한 수준일 수 있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도 차가운 바다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세월호 특별법을 놓고 정치인들은 물론 일반 국민들까지 이견을 가진 상대를 서로 물어뜯고 있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도 전에 계속 생채기가 나고 있는 셈이다. 아직 밤이 너무 캄캄하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속 주인공들은 치유될 것이고 행복해질 것이다. 무릇 미니시리즈, 특히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에서는 해피엔딩은 필연적인 귀결이니까. 그러나 답답한 현실 속에 사는 우리의 마음은 괜찮을까? 밤새 묶여 있던 낙타처럼 아침이 밝고 묶여 있던 끈이 풀려도 멍하니 그 자리에 서있게 되지는 않을까?

너무 늦기 전에 우리의 발목에 묶인 끈이 풀렸으면 좋겠다. 우리나라가 집단 우울증에 빠질까 봐 두렵다. 온 국민을 환자로 받기에는 정신과 병원이 모자랄 테니까.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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