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종합편성채널(종편), 케이블채널의 드라마들 참 잘나간다. 지상파 방송사에 몸을 담고 있는 피디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케이블과 종편의 드라마는 화제가 되더라도 시청률만큼은 1~2%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지상파 드라마 시청률과 비교 가능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이러다 두자릿수를 기록하는 케이블 드라마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 종영하면서 시청률 4%를 돌파한 <티브이엔>의 드라마 <연애 말고 결혼>. 세상에서 제일 진부한 드라마 소재 두 개로 제목을 만들었다. 식당 메뉴 이름으로 친다면 ‘밥과 국’? 그러나 순서가 ‘결혼 말고 연애’가 아니라 ‘연애 말고 결혼’이 되는 순간, 진부함의 굴레에서 벗어난다. 시대를 심각하게 역행하는 동시에 주시청자인 결혼적령기 여성의 속마음을 쿡 찌르는 지점이 있으니까.
트렌디 드라마인 만큼 요즘 젊은 남녀들의 귀에 쏙쏙 박히는 대사들이 참 많이도 나온다. 3화에서 여자 주인공에게 남자 주인공이 이런 대사를 던진다.
“남잔 0 아니면 1이야. 좋으면 좋은 거고 아니면 아니라고. 그 중간 어디쯤이라고 느껴진다면 그건 그냥 0이야.”
남자들의 연애심리에 대한 작가 나름의 분석이다. 여자 주인공은 이렇게 반문한다.
“0에서 1이 돼가는 중일 수도 있잖아! 하늘에서 1이 떨어질 때까지 방구석에 혼자 틀어박혀 있음 1이 되는 거야?”
흠. 우리는 오래전부터 남녀의 상이한 연애심리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 결과 남녀 연애심리 분석은 하나의 시장을 형성했고 어마어마한 종류의 책과 방송, 강연 등이 난무해왔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식의. 드라마 <연애 말고 결혼>의 0과 1에 관한 대사는 2014년 우리나라의 도시남녀에게 적절한 남녀 연애심리의 비유법이라 하겠다.
나름 연애 좀 해본 베테랑으로서 조언하건대 이 대사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물론 보편적으로 연애감정에 있어서 남자가 직관적이고 여자는 상대적으로 덜 직관적임은 여러 실험을 통해 증명된 바 있다. 여자들이 한눈에 남자들을 사로잡기 위한 외모에 많은 투자를 하고(화장품 시장과 성형 시장의 절대다수 고객은 여자), 남자들은 장기적으로 어필할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해석해본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남자와 여자가 존재하고 그들은 모두 다르다. 정말로 0 아니면 1인 남자도 있을 테고 0과 1 사이 무수한 지점에 감정을 두는 남자들도 있을 테다. 여자의 경우도 마찬가지. 남자 이상으로 한눈에 반하는 식의 연애를 하는 여자들도 있다. 내가 쓴 소설의 한 구절을 인용하자면, 원시시대부터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한 사람들의 수를 모두 합한 수보다 훨씬 많은 수의 사랑법이 존재하니까.
감히 말하건대, 일반적인 연애심리를 배우기 위해 책을 사 읽고 강연을 듣고 친구들과 상담할 시간에 바로 그 사람, ‘나의 상대’를 연구하라. 학문에 있어 일반론과 통계는 무척 유용하지만 연애에 있어서만큼은 득보다 실이 많다. 한정된 시간에 일반적인 남녀의 연애심리를 공부하느니 내 앞에 있는 실제 상대와 한마디 대화를 더 해보는 게 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 말고 결혼>의 0과 1 비유법은 명대사임이 확실하다. 듣자마자 ‘맞아 맞아!’ 무릎을 치게 되니까. 주변을 둘러보자. 별로 안 좋아하던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 남자의 수가 많은지 별로 안 좋아하던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 여자가 많은지.
여기서 또 궁금해진다. 이른바 ‘연애심리학’에 열광하는 쪽도 여자들이 훨씬 많다. 그 이유는 무얼까?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