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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엄마의 ‘재앙적 음식 솜씨’ 그리워하는 세계적 요리사

등록 2014-11-07 18:43수정 2014-11-08 13:24

<비비시>(BBC)가 2010년에 제작한 드라마 <토스트>
<비비시>(BBC)가 2010년에 제작한 드라마 <토스트>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영국 드라마 <토스트>
세계에서 음식 맛없기로는 제일간다는 나라지만, 흥미롭게도 가장 국제적인 인지도를 지닌 요리사들 중에는 영국 출신이 꽤 많다. 요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 해도 <네이키드 셰프>의 제이미 올리버나 <헬스 키친>의 독설 심사위원 고든 램지 등의 이름 정도는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비비시>(BBC)가 2010년에 제작한 드라마 <토스트>(사진)의 원작자 나이절 슬레이터 역시 영국 출신의 세계적 요리사 가운데 한명이다. 요리 실력 못지않게 뛰어난 글솜씨를 지닌 그는 2004년 출간한 자전소설로 영국도서상 전기 부문 올해의 책에 선정된 것을 비롯해 여러 상을 수상하며 큰 호평을 얻기도 했다. 드라마 <토스트>는 바로 그의 동명 자전소설에 기초하고 있다.

이야기는 아홉살 소년 나이절(오스카 케네디)의 시점으로 시작된다. 나이절은 한없이 다정하지만 요리 실력만큼은 재앙에 가까운 엄마(빅토리아 해밀턴) 밑에서 자라며 역설적으로 요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켄 스토트)는 이불 밑에 숨어 요리책이나 들여다보는 아들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자신을 감싸주던 엄마가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아버지와의 긴장 속에 남겨진 나이절은 꿋꿋하게 요리사의 꿈을 키워간다.

드라마는 원작보다 동화적이고 함축적인 성장서사를 담고 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각본가인 리 홀이 각색을 담당하여 자신의 고유한 작가적 색채를 불어넣은 덕이다. 드라마를 비평한 <뉴욕 타임스>에서는 나이절을 주방의 빌리 엘리어트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실제로 성 역할 고정관념에 갇힌 아버지와의 대립이나 성적 지향의 주제, 그리고 재능과 열정을 갖춘 소년이 꿈에 몰입하는 모습 등에서 <빌리 엘리어트>의 향기가 느껴진다.

드라마에서 제일 재미있는 부분은 좀더 자라 십대가 된 나이절(프레디 하이모어)과 새엄마 포터 부인(헬레나 보넘 카터)의 갈등 묘사다. 나이절은 모든 면에서 엄마와는 정반대인 그녀를 지독하게 혐오하면서도 천재적인 요리 솜씨만큼은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된다. 자극받은 나이절이 밤낮 없는 노력으로 식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그녀와 요리 대결을 펼치는 장면은 작품의 백미다. 196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의 향수를 담아낸 다양한 요리들과 레몬머랭파이, 애플파이, 로스트비프 등 맛깔스러운 디저트의 시각적 향연이 한없이 눈을 즐겁게 만든다.

김선영 티브이평론가
김선영 티브이평론가
흥미로운 것은 포터 부인의 화려한 음식이 환기시키는 요리의 기본 철학이다. 포터 부인의 요리는 나이절을 감탄하게 만들지만 감동을 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이 드라마의 제목이 상징하는 것은 그렇게나 형편없던 엄마의 요리다. 늘 요리에 실패하던 그녀가 “그냥 토스트나 만들어야겠구나”라고 버릇처럼 결론 내리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 ‘토스트’라는 제목이다. 그 식빵마저 까맣게 태우곤 하던 엄마였지만 딱딱한 껍질 아래의 부드러운 빵이 주는 기분 좋은 맛은 모든 요리의 기본이 애정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김선영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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