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익의 명대사 열전
“내 머릿속에는 내일, 너, 로맨틱, 성공적”
- 배우 이병헌 보통 명대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인용하기 마련이다. 칼럼 제목에 ‘명대사’라는 말이 들어간 이곳에서도 항상 영화와 드라마의 등장인물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그럴 수 없다. 현실의 인물들이 극작가와 연출가의 상상력을 압도하고 있는 요즘의 세태를 보며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의 한 사람으로 반성하기 위해서다. 먼저 ‘카톡 캡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원래는 친구나 연인끼리 오해를 풀기 위해 카톡창을 캡처한 화면을 보여주는 것에서 시작했는데 요즘은 이슈의 주인공들이 상대를 공격하거나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너도나도 카톡 캡처 화면을 공개하는 형국이다. 그야말로 대유행이다. 카톡이 없던 시절에도 문자메시지가 있긴 했다. 그러나 상대의 프로필 사진과 이름이 떡하니 뜨는 카톡 화면과는 은밀함의 수준이 다르다. 게다가 문자로는 일상의 시시콜콜한 감정까지 교환하지 않고 용건만 전하는 경우가 많기도 했고. 카톡 캡처는 대화가 이루어질 당시의 분위기마저 생생하게 전해줄 정도로 재생력이 뛰어나다. 도청처럼 거창한 장비도 필요 없고 스마트폰을 통한 전달과 확산에도 적격이다. 그러다보니 이제 무슨 이슈만 생기면 당사자들이 나눈 카톡 화면이 공개되고 대중은 각자가 배심원이 되어 쌍방의 과실 정도를 가늠해본다. 바로 어제(21일)만 해도 방송인 클라라와 소속사 대표간의 카톡이 공개되어 여론을 달구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카톡을 짜깁기했다며 서로 비난하는 와중에 한 매체에서 시간 순서대로 카톡 내용을 몽땅 공개해버린 것이다. 어떤 이들은 하릴없다며 기사를 읽지 않고 넘겼겠지만 언제나 흥밋거리를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만한 여흥거리가 또 없다. 말도 안 되는 막장드라마를 보는 것보단 실제로 일어났던 현실의 사건이 몰입도 면에서 훨씬 생생하니까. 아무리 끔찍한 범죄영화도 실제 연쇄살인범의 범죄일지 앞에서는 꼬리를 내리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 그런데 또 하나 흥미로운 현상은 이렇게 공개된 이슈메이커들의 카톡 내용이 패러디 되어 무수히 재생산된다는 것이다. 마치 영화와 드라마의 명대사를 패러디하듯이. 요 며칠 간은 클라라와 회장님의 카톡이 인기를 끌었지만, 뭐니뭐니해도 최근 가장 인기가 좋았던 소재는 이병헌의 대사였다. 극중 멋진 남자주인공의 대사가 아닌, 한 여자의 남편인 이병헌이 딸 뻘인 여자에게 했다고 알려진 말이다. “내 머릿속에는 내일, 너, 로맨틱, 성공적.” 내일 로맨틱한 분위기를 잘 만들어서 성공적으로 너를 어떻게 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지지 않나? 우리말에 꼭 필요한 어미를 전부 덜어낸, 대담한 생략법이 돋보이는 문장이다. 하아. 명대사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도다. 나부터 시작해서 이 땅의 작가들은 모두 반성해야 한다. 우리가 오죽 게으르고 무능했으면 작가도 아닌 배우가 창작의 고통을 떠맡았을까. 현실 속 명대사들이 튀어나오는 현장이 사회면과 연예면에만 있지는 않다.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위정자들의 실언이 패러디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안타깝게도 인용되는 대사들이 전부 비웃음의 대상이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일깨움을 주는 명대사들은 왜 찾기 어려운 걸까? 위정자들 역시 우리 작가들의 부족한 역량을 참다못해 직접 창작전선에 뛰어 들었겠지만, 이왕 하실 거라면 특정장르에 편중하지 않기를 주문해본다. 우리의 지도자들이여, 코미디가 아닌 감동의 드라마를 보여 달라. 아, 이 글도 ‘찌라시’로 분류되어 안 읽으시겠구나. 아까비.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
- 배우 이병헌 보통 명대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인용하기 마련이다. 칼럼 제목에 ‘명대사’라는 말이 들어간 이곳에서도 항상 영화와 드라마의 등장인물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그럴 수 없다. 현실의 인물들이 극작가와 연출가의 상상력을 압도하고 있는 요즘의 세태를 보며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의 한 사람으로 반성하기 위해서다. 먼저 ‘카톡 캡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원래는 친구나 연인끼리 오해를 풀기 위해 카톡창을 캡처한 화면을 보여주는 것에서 시작했는데 요즘은 이슈의 주인공들이 상대를 공격하거나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너도나도 카톡 캡처 화면을 공개하는 형국이다. 그야말로 대유행이다. 카톡이 없던 시절에도 문자메시지가 있긴 했다. 그러나 상대의 프로필 사진과 이름이 떡하니 뜨는 카톡 화면과는 은밀함의 수준이 다르다. 게다가 문자로는 일상의 시시콜콜한 감정까지 교환하지 않고 용건만 전하는 경우가 많기도 했고. 카톡 캡처는 대화가 이루어질 당시의 분위기마저 생생하게 전해줄 정도로 재생력이 뛰어나다. 도청처럼 거창한 장비도 필요 없고 스마트폰을 통한 전달과 확산에도 적격이다. 그러다보니 이제 무슨 이슈만 생기면 당사자들이 나눈 카톡 화면이 공개되고 대중은 각자가 배심원이 되어 쌍방의 과실 정도를 가늠해본다. 바로 어제(21일)만 해도 방송인 클라라와 소속사 대표간의 카톡이 공개되어 여론을 달구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카톡을 짜깁기했다며 서로 비난하는 와중에 한 매체에서 시간 순서대로 카톡 내용을 몽땅 공개해버린 것이다. 어떤 이들은 하릴없다며 기사를 읽지 않고 넘겼겠지만 언제나 흥밋거리를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만한 여흥거리가 또 없다. 말도 안 되는 막장드라마를 보는 것보단 실제로 일어났던 현실의 사건이 몰입도 면에서 훨씬 생생하니까. 아무리 끔찍한 범죄영화도 실제 연쇄살인범의 범죄일지 앞에서는 꼬리를 내리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 그런데 또 하나 흥미로운 현상은 이렇게 공개된 이슈메이커들의 카톡 내용이 패러디 되어 무수히 재생산된다는 것이다. 마치 영화와 드라마의 명대사를 패러디하듯이. 요 며칠 간은 클라라와 회장님의 카톡이 인기를 끌었지만, 뭐니뭐니해도 최근 가장 인기가 좋았던 소재는 이병헌의 대사였다. 극중 멋진 남자주인공의 대사가 아닌, 한 여자의 남편인 이병헌이 딸 뻘인 여자에게 했다고 알려진 말이다. “내 머릿속에는 내일, 너, 로맨틱, 성공적.” 내일 로맨틱한 분위기를 잘 만들어서 성공적으로 너를 어떻게 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지지 않나? 우리말에 꼭 필요한 어미를 전부 덜어낸, 대담한 생략법이 돋보이는 문장이다. 하아. 명대사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도다. 나부터 시작해서 이 땅의 작가들은 모두 반성해야 한다. 우리가 오죽 게으르고 무능했으면 작가도 아닌 배우가 창작의 고통을 떠맡았을까. 현실 속 명대사들이 튀어나오는 현장이 사회면과 연예면에만 있지는 않다.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위정자들의 실언이 패러디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안타깝게도 인용되는 대사들이 전부 비웃음의 대상이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일깨움을 주는 명대사들은 왜 찾기 어려운 걸까? 위정자들 역시 우리 작가들의 부족한 역량을 참다못해 직접 창작전선에 뛰어 들었겠지만, 이왕 하실 거라면 특정장르에 편중하지 않기를 주문해본다. 우리의 지도자들이여, 코미디가 아닌 감동의 드라마를 보여 달라. 아, 이 글도 ‘찌라시’로 분류되어 안 읽으시겠구나. 아까비.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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