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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안다, 아버지도 다 알아

등록 2015-02-05 18:57수정 2015-05-26 10:45

이재익의 명대사 열전
다 안다. 아버지도 다 알아.
- 가족끼리 왜 이래

불과 10년 전만 해도 텔레비전 드라마 시청률은 지금의 곱절은 넘었다. 20%는 기본이고 50%가 넘는 이른바 국민드라마도 심심찮게 나왔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드라마 시청률이 뚝뚝 떨어지더니 요즘은 10%만 넘어가도 안도의 한숨을 쉴 지경에 이르렀다. 지상파 방송국의 메인 시간대 드라마 중에서도 한자리 수 시청률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으니.

오늘 소개할 명대사는 이런 시청률 가뭄 속에서 40%대라는 믿기 힘든 숫자를 자랑하고 있는, 어쩌면 국민드라마라는 칭호를 붙일 수 있는 유일한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에서 골라봤다.

“다 안다. 아버지도 다 알아.”

아들이 인생사의 고단함을 토로하자 위로를 해주는, 극중 아버지 순봉 역을 맡은 유동근의 대사다.

명대사라는 표현을 붙이기엔 민망할 정도로 무난한 대사다. 드라마를 보다보면 유동근의 대사는 전부 이런 식이다. 어디서 들어본 말. 우리 아버지도 했던 것 같은 말. 심지어 ‘괜찮다, 다 괜찮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더라’ 식의 책제목을 그대로 갖다 쓴 대사도 종종 등장한다.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
어쩌면 이 드라마의 뚝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점이 아닐까한다. 애써 새롭게 보이기 위해, 멋있어 보이기 위해 꾸미지 않고 투박하게 진심을 전하는 것.

드라마의 구성도 그렇다. 이 드라마는 정말 전형적이어도 너무 심하게 전형적이라 할 정도로 ‘가족드라마’의 공식을 많이 차용하고 있다. 부모와 자식의 화해라는 주제부터가 그렇고, 주인공인 유동근이 3개월 시한부라는 설정도 익숙하다. 자기들만 아는 이기적인 자식들의 모습 또한 수많은 드라마에서 숱하게 봐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기발한 소재와 복잡한 설정으로 무장한 ‘요즘’ 드라마들 속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사실 시청률만 놓고 보자면 방송국의 효자 상품들은 아침드라마다. ‘막장’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비슷비슷한 느낌의 아침드라마들이 20%의 시청률을 꾸준히 지켜주고 있다. 애들이랑 남편을 밖에 내보내고 할 일 없는 아줌마들이 보는 드라마로 치부하기엔 숫자가 너무 크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자고로 드라마의 본령이란 대중성에 있다. 새로운 시도, 높은 완성도를 추구하기 이전에 우선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고려해야 한다. 뻔하고 막장인 드라마를 무조건 욕할 것이 아니라 그런 드라마를 보며 위안을 얻고 스트레스를 푸는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정서를 인정해야 한다.

물론! 매체와 장르의 발전을 위해서는 미드(미국드라마) 뺨치게 트렌디한 드라마,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드라마, 영화처럼 잘 찍은 드라마도 꾸준히 제작되어야 하겠지만, 오늘 인용한 대사처럼 멋없고 진부하더라도 편하고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드라마도 꼭 필요하다는 얘기다.

어찌 보면 부모님의 언어도 비슷하다. 떠올려보라. 부모님의 위로와 잔소리 중에 기발하고 근사한 표현이 있었는지. 아버지, 어머니의 진심이란 기발하고 근사한 미사여구가 아니라 순봉의 대사처럼 진부하고 투박한 말속에 담겨있지 않았나.

일찍이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믿음직한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하지 않다(信言不美, 美言不信). 부모님의 언어처럼, 멋이 부족하더라도 진심이 담겨있는 드라마를 응원하고 싶다.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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