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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죽은 소 뱃속의 시신과 아이들…‘일상에 숨은 폭력 탐구’

등록 2015-05-08 19:08수정 2015-10-26 17:42

프랑스 드라마 <릴 퀸퀸>
프랑스 드라마 <릴 퀸퀸>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프랑스 드라마 <릴 퀸퀸>
이번주 막을 내리는 제16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제일 화제를 모은 작품 중 하나는 <릴 퀸퀸>이다. 저명한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가 선정한 2014년 최고의 영화 1위에 등극하기도 했던 이 작품은 흥미롭게도 프랑스 아르테 티브이의 4부작 미니시리즈다. 최근 세계적인 영화감독들의 티브이 시리즈가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를 형성한 가운데 브뤼노 뒤몽의 <릴 퀸퀸> 역시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례로 유명한 작품들로는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카를로스>, 아그니에슈카 홀란트의 <타오르는 불씨>, 제인 캠피언의 <탑 오브 더 레이크> 등이 있고, 앞의 두 작품은 <릴 퀸퀸>과 마찬가지로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소개된 바 있다. 잘만 활용한다면 티브이와 영화 두 매체의 장점을 결합할 수 있기에 감독들에게는 또 하나의 도전과도 같은 형식이다. 티브이 시리즈는 여유로운 방영시간으로 섬세한 묘사에 유리하고, 영화는 거대한 와이드스크린을 통해 압도적인 이미지를 선사할 수 있다.

<릴 퀸퀸>은 이 도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낸다. 이는 헬리콥터가 죽은 소를 깊은 벙커 안에서 끌어올리는 강렬한 도입부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에서 예수조각상을 매달고 이동하는 유명한 헬기 신을 연상시키는 이 장면은 거대한 화면 안에서 펼쳐지는 파랗고 드넓은 하늘과 기계와 소의 시체라는 이질적인 결합을 통해 이 드라마 특유의 부조리한 분위기를 선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드라마는 서로 연관 없을 것 같은 두 개의 이야기를 주축으로 흘러간다. 하나는 이제 막 여름방학을 맞이한 꼬마 퀸퀸(알란 들레)과 친구들의 일상이고, 다른 하나는 죽은 소의 뱃속에서 발견된 시신의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수사 과정이다. 작은 시골마을의 평화로운 풍경과 공포스러운 연쇄 토막살인 사건의 괴리만큼이나 거리가 있어 보이는 두 이야기는, 그러나 깊이 파고들어 갈수록 하나의 썩은 뿌리에서 탄생한 폭력의 드라마라는 것이 드러난다.

시신이 발견된 벙커가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서 방치된 어린 퀸퀸과 친구들의 놀이터였다는 점부터 의미심장하다. 벙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사용됐다가 버려진 장소이며, 퀸퀸은 그 안에서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오래된 수류탄을 찾아 모으며 논다. 이처럼 잔혹한 폭력이 역사적 맥락을 상실한 채 아예 무심한 일상으로 자리잡은 부조리한 세계야말로 연쇄 살인 못지않게 공포스러운 이 시대의 냉혹한 실체다. 가령 수류탄을 사이에 둔 퀸퀸과 무슬림 소년의 싸움은 단순히 아이들의 갈등을 넘어 마을에 뿌리 깊이 자리한 인종주의적 폭력의 한 사례를 보여준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브뤼노 뒤몽은 늘 작품 속에서 인간과 짐승,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를 통해 만연한 폭력의 시대와 구원에 대한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가 처음으로 시도한 티브이 드라마 형식은 어린아이의 느슨하고 무료한 나날들을 긴 호흡으로 뒤따라가며 일상으로 자리한 폭력의 잔혹함을 더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수많은 평자들이 <릴 퀸퀸>을 그의 새로운 성취라 평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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