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익의 명대사 열전
아무것도 만지지 마라 - 컨테이젼
영화 <컨테이젼>이 요즘 다시 주목받고 있다. 개봉한지 몇 년이 지났고 겨우 20만 명 정도의 관객이 본 영화가 지금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메르스 때문이다. 낯선 호흡기 질환이 퍼지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영화니까. 우리 영화 중에서도 <감기>가 비슷한 소재와 내용을 갖고 있지만 <감기>는 재난영화라는 장르의 공식에 충실한 터라 실감이 덜 난다. 그러나 ‘전염’이라는 뜻의 직접적인 제목을 내세우는데서 알 수 있듯 <컨테이젼>은 얼핏 보면 다큐멘터리처럼 보일 정도로 생생하다.
“아무 것도 만지지 마라.” “누구도 만나지 마라.”
이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대사이자 영화 속 질병의 예방법이다.
이 영화는 감염자와 감염자 가족, 질병통제센터의 박사, 그리고 프리랜서 기자까지 등장해 옴니버스 식 구성으로 각각의 입장에서 전염병이 창궐하고 치료약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화면은 극사실적으로 연출한 반면, 출연진은 더 이상 화려할 수 없다. 맷 데이먼, 주드 로, 기네스 펠트로, 로렌스 피시번, 마리옹 꼬띠아르 등 혼자서도 영화 한 편은 능히 책임질 주연급 배우들이 우르르 출연했다. 캐스팅만 보면 재난영화 장르의 <오션스 일레븐>이랄까? 소재만으로는 묻히기 쉬운 이 영화를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봐주기를 바라는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염원 때문은 아닐까 예상해본다.
영화를 보다보면 거의 전염병 예방 계몽영화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노골적인 경고와 메시지를 접하게 된다. 사실 요즘 같은 때를 빌미로라도 이 영화를 찾아보는 것은 인생에 무척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메르스 사태를 보면서 이 영화 생각이 자꾸 나서 안타까웠다. 한 국가의 대국민 홍보 시스템이 남의 나라 영화 한 편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며칠 전에 발표한 메르스 예방 대책을 보면 개그가 따로 없다.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 같은 상식적인 생활지침과 함께 ‘낙타와 접촉 피하기’, ‘낙타고기 먹지 말기’ 등을 홍보하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한심한 홍보정책 아래 달린 댓글들이 오히려 예술이다. ‘출근할 때 낙타 타고 가려고 했는데 큰일날 뻔 했다’, ‘낙타 1종 따려고 했는데 포기’, ‘냉장고에 있는 낙타유 버려야겠다’ 등등. 아무 것도 만지지 말고, 아무도 만나지 말라는 <컨테이젼>의 과격한 대사가 더 와 닿는다. 낙타 운운하는 대신 차라리 이 영화를 보라고 하지.
혹자는 지나친 호들갑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나 역시도 마스크도 쓰지 않고 보통 때보다 손을 더 자주 씻지도 않는다. 나처럼 무덤덤하게 메르스 사태를 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반대로 마스크에 장갑으로 중무장한 채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당신이 어떤 태도를 취하든, 지금 우리가 마주한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강하고 일단 걸리면 치사율 또한 높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부에서는 지나친 공포를 우려하지만 대중의 공포는 정당하다. 무서워야 조심도 하는 법이니까.
앞으로도 새로운 바이러스는 계속 나타날 것이고 에이즈, 사스, 메르스 등을 뛰어넘는 무시무시한 바이러스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잘 알지 않나? 현실은 언제나 영화나 드라마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부디 메르스 사태가 더 이상의 희생자 없이 진정되기를 빈다. 아무 것도 만지지 말고, 아무도 만나지 말라는 영화 속 대사가 정부 관계자의 입을 통해 나오지 않기를 빈다.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
영화 <컨테이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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