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가창력 대결에서 벗어난
복면가왕·히든싱어·너목보 등 화제
가수 노래습관 따져가며 추리 재미
코미디 더해 출연자 탈락도 맘 편해
아이돌·잊혀진 가수 실력발휘 기회
문화방송 <복면가왕>에서 화제를 모았던 ‘황금락카 두통썼네’
우리 민족의 몸속에는 노래 유전자가 따로 있는 걸까. “언제나 5월이 되어 씨뿌리기가 끝나면,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밤낮으로 술 마시고 놀면서 여럿이 모여 춤추고 노래했다.”(<한국사 카페>(장용준 지음)) 삼한 사람들이 계절제를 지내며 노는 장면을 중국 역사가가 기록해 놓은 대목이다.
그 흥이 고스란히 텔레비전으로 옮겨왔다. 일반인이 노래 실력을 뽐내는 <전국노래자랑>(한국방송1), <케이팝 스타>(에스비에스)부터, 가수가 출연하는 정통 음악 프로그램인 <유희열의 스케치북>(한국방송2), <올댓뮤직>(한국방송1)까지 음악 관련 프로그램(시즌제 포함)만 20개에 이른다.
최근에는 가수들의 노래에 대결이나 추리 등 특정 장치를 접목한 ‘음악 예능’이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 4월 시즌3을 마친 <나는 가수다>(문화방송)가 노래 잘하는 가수들을 대결시키는 설정으로 2011년 ‘음악 예능’의 문을 연 이후 조금씩 늘어나다 최근엔 예능의 주요 포맷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모양새다.
문화방송 <복면가왕>
가수의 가창을 중심에 놓은 ‘음악 예능’만 7개다. 2012년 시작한 <불후의 명곡>(한국방송2)은 시대를 풍미한 가수를 초대해 출연 가수들이 이 선배 가수의 노래를 부르고 우승자를 뽑는다. <백인백곡-끝까지 간다>(제이티비시)는 가수와 일반인이 대결하고, 2월 종영하고 시즌2를 논의중인 <퍼펙트 싱어>(티브이엔)는 가수와 비가수 연예인팀이 대결한다. 특히 대결에 추리까지 더해진 프로그램들이 화제다. 4월 시작한 <일밤-복면가왕>(문화방송)은 <불후의 명곡>과 같은 맞대결 형식인데, 가수들이 복면을 쓰고 나와 누군지 맞히는 재미를 심었다. 하반기 시즌4를 방영하는 <히든싱어>(제이티비시)는 가수와 그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모창 도전자’가 막 뒤에서 노래하고 패널들이 진짜 가수를 찾아낸다. 하반기 시즌2를 방영하는 <너의 목소리가 보여>(엠넷)는 가수가 일반인들의 얼굴만 보고 실력자와 음치를 가려낸다.
<너의 목소리가 보여> 이선영 피디는 “음악 예능이 오디션 같은 단순한 서바이벌 구조에서 좀더 재미있는 방향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2011년 <나는 가수다>가 방영될 당시만 해도 ‘프로가수들의 가창력 대결’이란 장치는 논란의 대상이었다. 자부심 충만한 프로가수들의 노래에 점수를 매기고, 그런 상황을 예능의 도구로 활용하는 데 대해 적잖은 반발이 있었다.
4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논란은 희미해지고 대신 음악 예능이 대세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유가 뭘까. 대결이란 장치의 무게감을 덜어내 시청자들이 좀더 편하게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게 주요한 이유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불후의 명곡> 권재영 피디는 “노래와 대결의 비중을 9 대 1로 잡아 대결에 따른 불편함을 없앴다. 떨어진 가수가 대기실에서 함께 웃고 즐기며 시청자들도 편안하게 볼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복면가왕>의 복면도 비슷한 맥락이다. 가면을 쓰면 출연자의 표정이 감춰진다. 그가 극도의 긴장에 휩싸였다 한들 그 느낌이 시청자까지 오롯이 전달되기 힘들다. <복면가왕> 민철기 피디는 “코미디적 요소를 가미해 대결이 주는 무게를 덜었고, 시청자들이 유쾌하게 과정을 즐기도록 하는 데 신경썼다”고 말했다. “개그맨들까지 심사위원단에 참가시킨 것도 시청자와 같은 마음으로 판단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민 피디는 밝혔다.
엠넷 <너의 목소리가 보여>
한국방송2 <불후의 명곡>
예능이란 외피에도, 음악 자체를 소홀히 다루지 않고 있는 점 역시 흡인력을 키운다. <복면가왕> 제작진은 권인하가 탈락한 뒤 그가 대표곡을 부를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 주었다. <너의 목소리가 보여>의 노래 잘하는 아마추어들이나, <히든싱어>의 가수보다 노래 잘하는 모창 도전자들의 노래 실력은 감탄을 자아낸다. 녹화 현장의 소리가 시청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음향에도 각별히 관심을 기울인다고 한다. 민철기 피디는 “밴드가 무대 옆에서 실제로 라이브 연주를 하는 등 음향에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투자한다”고 말했다.
추리라는 장치는 시청자가 프로그램 전 과정을 즐기면서 보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민철기 피디는 “<복면가왕>의 본방송 주요 시청층은 주로 30~50대인데, 디엠비나 다시보기, 인터넷 등에서는 10대와 20대의 반응이 뜨겁다”고 했다. 프로그램을 놀이의 도구로 삼는 데 익숙한 10대들은 가수가 누구인지를 추측하는 근거들을 인터넷 블로그 등에 옮기며 화제몰이에 앞장선다. 프로그램이 끝날 때마다 복면 속 인물이 누구인지 파헤치기 바쁘다.
티브이엔 <퍼펙트 싱어>
1·2대 가왕인 ‘황금락카 두통썼네’의 경우는 노래할 때 손동작이나 귀모양까지 비교해 루나라는 사실을 추측했다. <불후의 명곡> 권재영 피디는 “음악엔 범접하기 힘든 추억과 공감의 코드가 있다. 추억과 공감을 예능에 접목시키니 폭발력이 큰 것”이라고 말했다.
재야의 실력파 가수들을 대중에 알리는 기회도 되고 있다. <너의 목소리가 보여>에서는 가수 황치열이 일반인 참가자로 출연해 9년의 무명생활을 씻고 새롭게 조명받았고, <복면가왕>에서 3대 가왕이었던 가수 진주는 “추억의 가수로 잊혀지기도 했고, 어느 순간 놓고 싶다는 생각도 했는데 감사하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특히 아이돌 가수들의 재평가는 이채롭다. 여러명이 나와 각자의 파트를 불러야 해 노래보단 얼굴, 춤이 부각됐던 그들은 이 프로그램에서 노래 실력을 발휘하며 단숨에 유명세를 치렀다. 이엑스아이디의 솔지와 에프엑스의 루나, 비원에이포의 산들이 대표적이다. 산들은 “아이돌이라서 노래를 못할 것이라는 편견에서 자유로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히든싱어>처럼 노래의 꿈만 간직하고 살던 일반인들이 잠시나마 꿈을 이루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권재영 피디는 “활동을 쉬었던 가수나, 설 무대가 드물었던 중견 가수, 아이돌 가수 등이 재평가되고, 새로운 기회를 얻는 것이 음악 예능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관련기사] ▶복면가왕, 감추려는 자와 벗기려는 자의 싸움[관련영상] <복면가왕>, 진화한 음악예능 /잉여싸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