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옷 걷어내는 아침 드라마들
방송 3사 “따뜻한 가족애로 대신” 입모아
복잡한 인물관계·극단적 캐릭터 등은 여전
미니시리즈 형식의 트렌디 드라마가 나올 때마다 강조하는 게 있다. “이번엔 신데렐라 이야기가 아니다”라거나 “재벌 2세가 나오긴 하지만 좀 다르다”는 것 따위다. 그럼에도 신데렐라와 재벌 2세 코드는 여전히 흥행을 위한 보증수표처럼 애용되지만, ‘삼순이’ 등 걸출한 캐릭터가 나오며 한국 트렌디 드라마의 상당한 변화가 시도되고 있다.
아침 드라마도 다르지 않다. 외도, 불륜, 이혼, 치정, 복수, 출생의 비밀 등 설정은 오전 시간대 아침 드라마의 주 시청층인 가정 주부들의 눈을 잡아끌기 위해 손쉽게 이용돼 온 ‘공식’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여기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10일 새로 시작한 에스비에스 아침 드라마 <들꽃>(사진)은, “불륜을 피한 따뜻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나섰다. 여러 동생들을 부모 대신 돌보며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30대 여성의 성공담이 줄거리다. 이를 통해 가족과 사랑, 성공의 의미 등을 그려나갈 계획이다.
31일 첫 전파를 탈 한국방송 아침 드라마 <걱정하지 마>는 18살 연상의 남자와 결혼하는 20살 여성과 연하의 총각과 사랑에 빠지는 39살 중년 여성의 사랑을 중심으로 “밝고 건강한 이야기”를 표방한다.
지난 8월부터 방영되고 있는 문화방송 아침 드라마 <자매바다>도 “사람 냄새 나는 드라마”를 내세웠다. 1950년대 배경의 시대극으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성공을 추구하는 두 자매의 삶과 사랑을 그린다는 것이다.
하나같이 아침 드라마가 다뤄온 불륜의 폐해를 인정하고, 이를 극복해내겠다고 했다. 이런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시청자들의 높아진 눈높이에 있다. 웬만한 자극적 설정으로는 아침 주부 시청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제작진의 위기 의식이 반영된 셈이다. 드라마뿐 아니라 영화에서도 거세게 불고 있는 여성 캐릭터 변화와도 맞물린 현상이다.
그래서 연출자들은 하나같이 ‘따뜻한 감동’을 내세운다. <들꽃>의 조남국 피디는 “작가와 기획회의를 하면서 (불륜을 이용해) 쉽게 갈까 하고 생각도 했지만 그렇게 타협하지 않기로 했다”며 “(시청률에서 실패할) 위험 부담은 있지만 불륜이 아닌 따뜻한 이야기로도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걱정하지 마>의 제작진도 “어둡고 칙칙한 아침 드라마에서 벗어나 배신도 불륜도 악인도 없는 명랑 코드의 휴먼 멜로 가족 드라마로 만들겠다”고 설명한다. <자매바다>도 “사생아나 불륜 등 자극적 내용 없이 내용으로 승부를 겨루겠다”는 뜻을 내세웠다.
그러나 한계는 뚜렷하다. <들꽃>은 재벌급 남성과 가난하지만 억척스러운 여성의 만남이나 기억상실이라는 설정 등에서 여전히 기존 드라마의 문법을 따르고 있다. <걱정하지 마>도 불륜 등은 나오지 않지만 연인 관계의 복잡함은 다른 드라마와 겨눌 바가 못된다. <자매바다>에서 한 남자가 두 자매를 두고 벌이는 쟁탈전과 인물의 성격도 자극적이지 않다고 말하기 어렵다. 불륜은 피해가면서도, 다른 자극적 설정이 그 자리를 메운 모양새다.
한 드라마 피디는 “불륜이라는 아침 드라마의 천편일률적인 소재에 대한 반성이 나오기 시작했다”며 “당장 모든 자극적인 설정이 사라지긴 어렵겠지만, 아침 드라마의 변화는 불가피하며 이미 시작됐다”고 진단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한 드라마 피디는 “불륜이라는 아침 드라마의 천편일률적인 소재에 대한 반성이 나오기 시작했다”며 “당장 모든 자극적인 설정이 사라지긴 어렵겠지만, 아침 드라마의 변화는 불가피하며 이미 시작됐다”고 진단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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