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죄인입니다” - 영화 <소수의견>중에서
영화 <소수의견>은 철거 현장에서 경찰을 죽인 남자(이경영)의 재판을 둘러싼 이야기다. 구조가 간단치 않은 것이, 이 남자가 경찰을 죽인 이유가 자기 아들이 눈앞에서 경찰에게 맞아 죽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즉, 정당방위를 주장하는 셈이다. 그런데 경찰은 남자의 아들을 죽인 사람이 경찰이 아니라 용역이라고 맞선다. 이렇게 상반되는 주장들 속에서 진실을 밝혀내는 변호사들(윤계상, 유해진)에 의해 영화가 전개된다.
결국 아들을 죽인 범인은 경찰임이 밝혀졌고, 경찰 수뇌부의 불법진압 지시, 검찰의 조작수사 등까지 까발려진다. 그런데도 피고 이경영에게는 정황을 참작한 일정량의 형량이 선고됐고, 재판이 끝난 후 이경영은 기자들 앞에 서서 이 대사를 되풀이한다.
“나는 죄인입니다.”
영화를 볼 때도 별 감흥이 없었던 이 대사가 다시 선명하게 각인된 건 최근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른바 ‘세 모자’ 사건 때문이다. 얼마 전 충격적인 제목과 내용의 글이 수백만 네티즌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제목이 무려 ‘나는 더러운 여자이지만 엄마입니다’다. 대형 교회의 목사 남편에게 강제로 성폭행과 성매매를 당하고 혼음과 마약파티까지 이뤄졌다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심지어 어린 두 아들까지 이런 범죄에 희생되었으며 남편이 막강한 재력과 인맥을 동원해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고백은 공분을 불러일으켰고 지난 주말 <에스비에스>(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에 드디어 이 사건이 나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프로그램에서 밝힌 사건의 실체는 그 엄마의 고백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증거라고는 그 엄마와 아이들의 진술밖에 없는데다가 남편 역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위치가 아니라 지방에서 피자배달을 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게다가 경찰 수사에서 남편의 컴퓨터에 저장된 사진과 동영상들이 확보되었는데 하나같이 화목한 가족의 일상을 담은 내용이었다. 해당 프로그램에서는 이번주 주말에 후속편을 보도한다고 했지만, 이미 시청자들은 그 엄마의 주장을 거짓으로 믿는 분위기다. 나 역시 마찬가지고.
이 사건은 시사점이 너무나도 많기에 이 짧은 칼럼에서 다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니 오늘 내가 꺼내든 영화 <소수의견>과 교집합을 이루는 부분 한 가지만 말하겠다.
약자들의 의견은 무시되기 일쑤지만, 반대로 적절한 발화점만 찾으면 강력한 휘발성으로 타오른다. 사연이 억울하면 억울할수록, 상대하는 대상이 크면 클수록 휘발성도 강해진다. 영화 <소수의견>에서도 그랬고 실제 세 모자 사건도 그랬다.
그런데 억울한 사연이 조작되었음이 밝혀진다면? 영화 <소수의견> 안에서 이경영 주장은 진실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전개되지 않았지만, 만약 조작이었다면 두 변호사가 사건에서 손을 떼고 이경영에게 가중처벌이 내려지는 것으로 결론이 났을 것이다. 실제 사건인 이 경우에는 어떤가. 당연히 이 엄청난 사태를 초래한 그 엄마에 대한 처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다. 생각지 못한 후폭풍이 기다리고 있다.
불신. 소수의견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 그것이다. 양치기 소년의 학습효과처럼, 진짜 억울한 피해자가 자신의 사연을 호소해도 사람들은 의심하고 등을 돌릴 수 있다. 만약 주장이 조작으로 밝혀진다면, 그는 미래의 진짜 피해자들에게 심각한 죄를 저지른 셈이다.
이제 그든 그의 남편이든 어느 한쪽은 벌을 받을 것이다. 영화 <소수의견>에서 피고 이경영은 진실을 주장했고 관객들에게 심정적 무죄를 선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되뇌며 고개를 숙였다. 현실 속 이 사건의 피고는 누가 될지, 또 과연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