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순이와 함께 눈물” 40·50대 주부의 힘-장밋빛 인생
40, 50대 주부 불쌍한 맹순이와 함께 눈물
“구태의연한 신파로 작품성은 퇴보” 지적도
한국방송 수목드라마 〈장밋빛 인생〉이 15회째인 12일 가구시청률 47.0%(티엔에스 미디어코리아 조사)를 기록했다. 40대 여성들이 결집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1~15회까지 40대 여성들의 평균 시청률이 28.9%로 가장 높게 나왔고, 50대 여성(27.3%)이 뒤를 이었다. 평균 점유율도 40대 여성이 53.7%, 50대 여성이 51.5%로 조사됐다.
비결은 역시 감정이입과 공감이다. 삼순이에 30대 여성이 환호했던 것과 겉모습은 비슷하다. 이른바 ‘노처녀’의 일과 사랑 쟁취기에 30대 여성이 열광한 것처럼, 40대 여성은 맹순이의 절망적 운명에 함께 울고 웃는다. 안 입고 안 먹으며 가족에만 목숨 걸어온 40대 주부의 이야기이기에 그렇다. 거기에 연하 남편이 바람 피우고 불치의 말기암에 걸리면서 극적 상황은 고조된다. 뒤늦은 남편의 참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맹순이의 운명에 눈물을 흘리며 눈길이 빨려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터다. “보고 있으면 짜증이 나고 울화통이 터지면서도 자꾸만 보게 된다”는 한 50대 여성 시청자의 말이 이를 잘 설명한다.
최진실이 맹순이와 겹쳐 보이는 것도 큰 구실을 한다. 연기자의 개인적 아픔을 드라마에 이용했다는 개연성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시청자들은 매체를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돼 잘 안다고 여기는 최진실의 개인사와 맹순이의 그것을 따로 떼어놓지 않는다.
같은 시간대 타사 드라마의 역량 부족도 반사 이익이다. 문화방송 〈가을 소나기〉는 눈물을 억지로 짜내려는 듯한 작위성 때문에, 에스비에스 〈사랑은 기적이 필요해〉는 너무나 익숙한 삼순이 캐릭터의 재방송 격으로 비춰지며 시청자들을 잡아당기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장밋빛 인생〉은 다른 면에서 한국 드라마의 퇴보상을 보여준다. 40~50대 여성들을 흡입하는 무기가 이미 옛 창고의 먼지 쌓인 것이기에 그렇다.
우선 신파다. 맹순이는 날 때부터 불쌍했고 지금까지도 가련하다. 가난한 집 장녀로 태어나, 가출한 어머니의 구실을 대신하고 여자상업고교를 졸업했다. 바람 피운 남편은 철부지 연하이고 시어머니는 이기적이다. 위암 선고를 받으며 맹순이의 가련함은 폭발 지경에 이른다. 맹순이를 가장 낮고 험한 곳에 떨어뜨려 시청자들에게 동정표를 얻는 방식이다.
맹순이가 주인공임에도 맹순이에게 운명을 헤쳐나갈 의지는 주어져 있지 않다. 남편의 이혼 요구에 당당히 맞설 포부도 없으며, 시집 식구의 횡포에도 ‘투쟁’하려 하지 않는다. ‘나’보다는 늘 ‘가족’이 중심에 있다. 그렇기에 결혼 10돌 기념일에 이혼을 요구한 무책임한 남편의 가정 복귀를 아무런 대책 없이 기다리는 것이다. 맹순이가 극복할 수 없는 불치병에 걸리도록 설정한 것도 맥락을 같이한다.
삼순이와 맹순이의 차이는 그래서 크다. 두 드라마가 모두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자아냈으나, 삼순이에서 현대사회에 대한 풍자를 읽을 수 있는 반면, 맹순이에서는 신파를 주축으로 한 각종 극적 장치로 쉽게 승부하려는 계산만이 보이는 것이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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