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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가난과 동행하는 삶…현실은 TV보다 아팠네

등록 2016-05-08 19:08수정 2016-05-08 20:40

KBS 다큐 ‘동행’이 비춘 빈곤
아이들은 몇 살쯤 되면 ‘차이’를 알게 될까. 키가 얼마만큼 크면 자신 앞에 선 가난의 벽을 올려다보는 걸까.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8살 이삭이는 짝꿍이 그리는 ‘이층집’을 보며 천진하게 말한다. “우와~ 우리 집은 쪽방집인데. 피디 삼촌, 집 안에 계단이 있을 수 있어요?”(2016년 4월30일 방송 ‘내 보물 이삭이’ 편 중에서)

2012년 한국갤럽에서 실시한 ‘빈곤에 대한 인식 조사’를 보면 당시 응답자(전국 만 19살 이상 성인 남녀 1501명)의 72.8%가 ‘극빈가구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고 응답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5년 빈곤통계연보’를 보면 사회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악화되거나 정체했다. 하지만 텔레비전에서 이런 복잡하고 머리 아픈 현실을 찾기란 쉽지 않다. ‘바보상자’라는 숙명 때문일까. 티브이는 현실을 가장한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 예쁘게 보여주는 쪽을 주로 선택하고 만다.

어려운 이웃과 함께 걸어온 9년
제작진 “가난의 대물림 심각해져”

친구네 ‘이층집’이 신기한 쪽방촌 8살…
부모 잃고 학교 대신 알바하는 자매…

시청자 후원으로 자활 희망 얻지만
“탈빈곤 위한 지속가능한 복지 절실
아이들 꿈이 없는 게 가장 가슴아파”

2016년 4월30일 방송 ‘내 보물 이삭이’ 편 중에서. 사진 KBS 방송 갈무리
2016년 4월30일 방송 ‘내 보물 이삭이’ 편 중에서. 사진 KBS 방송 갈무리
<동행>(한국방송1 토 오후 6시15분)은 다르다. 2007년 11월8일 <현장르포 동행>으로 시작해 잠시 <소나기>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2015년 1월3일 <동행>으로 돌아오면서, 가난한 이웃의 모습을 진솔하게 담아왔다. ‘현장 르포’라는 이름을 떼고 나선 절대빈곤층보다 차상위계층, 좀 더 자활 가능성이 있는 출연자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시 일어서겠다는 의지 하나로 희망을 꿈꾸는 출연자들의 모습에서 건강한 삶의 태도를 배우게 된다는 시청자들이 많다. 자동응답전화(ARS) 등을 통한 후원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출연자들을 만나는 현장 피디들은 가난의 대물림, 꿈을 잃은 아이들에 대한 깊은 고민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이들과 지난 9년간의 동행, 한국 사회 빈곤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2016년 2월13일 방송 ‘짱구오빠’ 편. 사진 KBS 방송 갈무리
2016년 2월13일 방송 ‘짱구오빠’ 편. 사진 KBS 방송 갈무리
■ <동행> 한 편이 나오기까지 현재 <동행>은 외주제작사 타임프로덕션과 미디어파크 소속 피디 6명이 돌아가며 만든다. 섭외에 2주, 촬영에 2주, 편집에 2주 총 6주가 걸려 한 편이 완성된다.

“‘당신은 나의 운명’이라는 노래도 있잖아요. 명숙이랑 나랑은 운명인가 봐요.” 일용직을 전전하면서도 다운증후군 여동생을 20년간 돌보고 있는 문수씨. 동생과 함께 먹을 고등어를 사들고 집에 가는 길. 엉뚱하게도 그는 “통닭 삶아 먹자”고 말한다. ‘고등어’라는 말을 모르는 동생을 위한 ‘남매만의 언어’다.(2016년 2월13일 방송 ‘짱구오빠’ 편.) 이런 사연은 어떻게 찾은 걸까. 타임프로덕션 김필성 피디는 “지역장애인단체에서 제보해준 경우”라고 설명했다. 앞선 이삭이의 사연은 영등포 쪽방촌 사정을 잘 아는 공기업 직원이 익명으로 제보했다. 제보 외에도 제작진이 지역아동센터 등 복지기관에 정기적으로 전화를 돌려 사례를 찾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여전히 섭외 대상자들의 출연 결심은 쉽지 않은 편. 특히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은 아이들 눈치를 많이 본다. 당장 도움이 필요해도 행여나 아이가 받을 상처부터 생각하는 게 부모의 마음. 이럴 땐 피디들이 직접 나서 아이들에게 “부모님을 세상에서 제일 멋진 엄마 아빠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기도 한다.

1월9일 방송된 ‘강민, 아빠의 손이 되다’ 편. 사진 KBS 방송 갈무리
1월9일 방송된 ‘강민, 아빠의 손이 되다’ 편. 사진 KBS 방송 갈무리
<동행> 촬영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다. 촬영본의 10분의 1만 방송에 나간다. 미디어파크 김성룡 피디는 1월9일 방송된 ‘강민, 아빠의 손이 되다’ 편을 찍기 위해 해남 땅끝에서 배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서넙도로 들어갔다. 루게릭병에 걸린 아빠의 뱃일을 돕는 ‘지적장애 2급’ 열일곱 살 강민이를 만나러 간 길. 너무 멀어 작가조차 따라오지 않았다. 숙박시설이 없어 열흘간 함께 먹고 자는데 마침 크리스마스. 통닭 4인분을 시켜놓고 트리도 같이 만들었단다. 추억이 많은데다 서서히 몸이 굳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 어른거려 가장 기억에 남는 가족이라고.

아이들은 나이가 어릴수록 ‘피디 삼촌’을 따른다. 무조건 자기편이 돼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존재 자체를 반가워한다. 방송이 끝나도 대부분 서로 연락을 이어간다. “나한테 선물을 안 주는 걸 보면 산타 할아버지는 없는 것 같다”던 말이 신경이 쓰였던 걸까. ‘내 보물 이삭이’ 편을 찍은 박범찬 피디는 어린이날을 앞둔 지난 3일 다시 쪽방촌을 찾아 이삭이에게 ‘터닝메카드’를 선물로 주고 왔다.

‘아빠와 클라리넷’ 편. 사진 KBS 방송 갈무리
‘아빠와 클라리넷’ 편. 사진 KBS 방송 갈무리
■ “가난의 대물림 심각해져” 9년간 <동행> 제작에 몸담은 김필성 피디는 “가난의 대물림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한다. 2012년 말~2013년 말 <현장르포 동행> 사례 21건을 정리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3년 보고서에서도 ‘가난이 가난을 부르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대부분의 가정이 퇴거 위험, 임시거처 생활 등 주거불안을 겪었다. 어머니 가출 뒤 아버지마저 숨지자 자매는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에 나섰다. 정신분열증을 앓는 어머니, 몸이 불편한 아버지 밑에서 장남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장에 취직했다. 사업 실패, 과중한 의료비, 가정 해체라는 ‘사건’ 뒤 아이들은 ‘교육의 기회’ 대신 ‘노동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김 피디는 “시청자들이 동행을 보면서 ‘대단한 판타지’를 원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개천에서 용 나는’ 이야기를 동행에서만큼은 보길 원하는 마음을 이해한다면서도 “찾기가 쉽지는 않다”고 털어놓는다. 올해 1월 클라리넷으로 서울대에 입학한 한샘이의 사연이 방송을 타긴 했지만 <동행> 출연자 중에서 극히 드문 사례다.

김 피디가 제일 큰 문제로 꼽는 것은 아이들에게 꿈이 없다는 것. “커서 뭐 하고 싶어”라고 물어봐도 선뜻 대답을 못하는 아이들 때문에 가장 마음이 아프다는 그는 그래서인지 “동행은 전체 사회로 보면 ‘언 발에 오줌 누기’”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가 ‘탈빈곤’을 위한 지속가능한 복지를 더 많이 고민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 ‘삼인사각’의 희망릴레이 현실이 어두울수록 <동행> 같은 프로그램이 빛을 발한다. 특히 시청자들의 후원이 없었다면 <동행>은 지금까지 계속 이어질 수 없었을 터. 제작진과 출연자, 시청자가 함께 발을 묶고 희망을 향해 달리는 ‘삼인사각’의 희망릴레이인 셈이다. <동행> 후원은 자동응답전화, 계좌입금, 온라인 ‘해피빈’ 기부 등을 통해 할 수 있다. 후원금은 작년부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는데 일괄지급 대신 매달 생계비 지원이 원칙이다. 이사 등 예외적 경우에만 필요한 금액만큼 집행하고, 병원비와 관련된 부분은 별도 후원을 받아 해결하는 편이다.

서울대에 입학한 한샘이는 시청자 후원금과 기업 장학금을 받고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서 음악을 배우는 학생들을 위해 교육봉사까지 하고 있다. 김성룡 피디가 가장 큰 변화를 보인 가정으로 꼽은 ‘내게 기대요, 아빠’ 편(2016년 2월20일 방송)의 은솔이네는 어떨까. 아빠의 갑작스런 실명과 우울증으로 조각났던 가족들의 마음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다시 뭉치게 됐다. 아빠는 안마수련원 교육과정에 입소해 자활의 길을 걷고, 특성화고에서 제과제빵을 배우는 맏딸 은솔이는 김영모 제과명인을 만나 지속적인 교육을 약속받았다.

이삭이가 뛰어노는 쪽방촌은 어른에게도 외롭고 위험한 ‘섬’이다. 벌써부터 아이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노숙인 ‘삼촌’들의 모습을 따라한다. ‘피디 삼촌’이 하지 말라고 하는데, 이삭이는 천진하기만 하다. 이 아이와 함께 발 맞춰 걷고 싶다면, 아직 늦지 않았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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