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 리틀 히어로> 출연 당시 지대한군.
아이의 꿈은 원래 우주비행사였다. “외계인이 보고싶다”던 아이는 2011년 우연히 감독의 눈에 띄어 <마이 리틀 히어로>(2013)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필리핀계 혼혈 ‘김영광’ 역이었다. 경기도 안산에서 태어났지만 스리랑카 출신 아빠와 한국인 엄마를 둔 아이의 외모는 영화에 딱 맞아떨어지는 ‘맞춤옷’ 같았다. 관객은 18만6천여명에 불과했지만 아이는 2013년 백상예술대상에서 ‘남자신인연기상’을 받았다. 12살 때 일이다. 그때부터 15살이 된 지금까지도 아이의 꿈은 ‘영화배우’다. 아이의 이름은 지대한. 영화 속 ‘영광이’는 차별을 이겨내고 꿈을 이뤘다. 현실의 대한이는 어떨까.
대한이가 방과후에 다니는 안산 이주민센터 부설 한국다문화학교 관계자는 “현재 중학교 3학년으로 방송부 활동도 하며 활달하게 지내고 있다”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다들 대한이가 기획사에 들어간 걸로 알고 있는데 아니다. 백상 신인상 이후에 아무것도 없다. 여러 매체에서 전화가 오긴 했는데 대한이를 배우나 연기자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다문화가정 사례로만 접근하려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마이 리틀 히어로> 이후 독립영화 한 편을 더 찍긴 했다. 이 관계자는 “좀더 대중적 파급력이 있는 드라마를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좀처럼 기회가 오질 않는다”며 “이 아이의 꿈에 대해서도 관심을 좀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같은 다문화가정 출신이면서 이미 꿈을 이룬 경우도 있다. 엠넷 <프로듀스 101>에서 인기투표 1위에 오른 뒤 그룹 ‘아이오아이’(I.O.I)로 활동 중인 전소미(15)나 2014년 솔로로 데뷔한 샤넌(18), 그룹 ‘세븐틴’의 버논(18) 등 최근 가요계에서 약진 중인 아이돌들이 대표적이다.
2015년 기준 다문화가정 수(추정)는 2012년보다 4.3% 늘어난 27만8천가구에 이른다. 만 9~24살 자녀도 8만여명에 이른다. 다문화가정 출신 스타 출현이 갑작스럽지 않음을 말한다. 하지만 이들이 백인계 외모를 가졌다는 점 또한 크게 작용했으리라는 지적이 많다. 버논의 경우,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닮은꼴로 온라인에서 비교 사진이 돌아다니기도 한다.
물론 이들이라고 ‘꽃길’만 걷지는 않는다. 가요계 대선배 인순이나 윤미래, 소냐 등을 향했던 ‘편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들도 다문화가정 출신으로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는다. 전소미는 최근 예능 <해피투게더>(한국방송)에 나와 “어릴 때 나를 신기하게 보는 시선 때문에 성형수술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샤넌 역시 지난해 한 방송에서 길거리에서 자신을 대놓고 쳐다보는 사람들 때문에 “내 얼굴에 문제가 있는 줄 알았다”며 속상해하기도 했다. ‘다름’에 대한 수용도가 낮은 한국 사회에서 이들 또한 시선의 ‘폭력’에 노출돼 있음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피부색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향된 선호가 다문화가정 출신 스타 탄생에 주요 변수로 작용한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황진미 대중문화 평론가는 “연예계는 사회에 비하면 훨씬 개방적인 면이 있다. 원래 다양성을 추구하는 곳이다 보니 과거에도 인순이처럼 뛰어난 실력만 있으면 받아들여졌다”며 “그런 연예계에서조차 대한이 같은 아시아계 다문화가정 출신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문화가정 출신 스타 출현의 기우뚱한 양상은 우리 대중문화의 협소한 시야와도 관련돼 있다. 범아시아적 인기를 누리는 케이팝이 영토를 넓혀감에 따라 아이돌 그룹의 외국인 멤버는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상황이 됐다. 하지만 국내 관객이나 시청자가 우선인 영화나 드라마에선 여전히 재현 대상 자체를 제한하는 경우가 지배적이다. 황진미 평론가는 “한국 사회에 아시아계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훨씬 많은데 방송에서 재현되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백인계가 압도적”이라며 “아시아계 다문화가정 출신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장애인까지 소수자들을 마치 없는 사람처럼 재현하지 않는 방식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계 다문화가정 아이들과의 자연스런 접촉 등은 우리 일상의 하나로 등장한 지 오래다. 하지만 우리 대중문화 속에선 이런 배역 자체를 회피하거나 특정 피부색에 한정하는 경향이 다문화 스타 탄생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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