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회를 맞은 ‘걸어서 세계 속으로’ 책임피디 김서호(왼쪽) 부장과 윤성도(오른쪽) 피디를 11일 여의도 <한국방송> 본관 로비에서 만났다. 사진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i.co.kr
“대학생 딸이 그래요. 친구들이 아빠를 제일 부러워한다고요.”(김서호 부장)
“중학생인 딸 친구 아빠들이 저를 제일 부러워합니다.”(윤성도 피디)
두 사람은 <한국방송>(KBS) 여행다큐인 <걸어서 세계 속으로>(이하 걸세)를 만들고 있다. 일이 세계여행이라니, 누군들 부러워할 만하다. 지난 8일 500회를 맞은 걸세의 책임피디 김서호(54) 부장과 윤성도(46) 피디를 11일 여의도 <한국방송> 본관 로비에서 만났다.
2005년 첫 전파를 탄 뒤 500회까지 142개 나라 1303개 도시를 찾아다녔다. 걸세는 피디 1인 제작 시스템으로 만든다. 피디가 직접 촬영하고 글도 쓴다. 토요일 오전시간대 시청률 강자이기도 하다. “시청률이 평균 8~9% 나옵니다. ‘한국방송’ 교양프로 가운데 가장 높은 편이죠.”(김) 방송 초기 3~4%대에서 2배 이상 오른 셈이다. 케이블의 파고에도 흔들림없는 그야말로 ‘독야청청’이다.
“시청률이 최근 더 올라가는 느낌입니다. 봄가을은 야외활동이 많아서 전반적으로 티브이 시청률이 떨어지는데 최근에도 걸세는 8~9%를 유지하고 있거든요.”
걸세는 2009년 10월 제작비 절감 등을 이유로 폐지된 뒤 이듬해 초 다시 살아난 이력이 있다. 시청자 반발이 거셌기 때문이다. 시청자 게시판에 거의 매일 부활 요구 글이 올랐고 포털에서 서명운동도 있었다.
이런 사랑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정통적인 방식으로 여행 정보를 한결같이 전달하는 게 이유겠지요. 피디가 다른 출연자 없이 1인칭 시점에서 자기가 본 것을 생생히 전달하는 게 장점입니다.”(김) “일상의 소소한 모습에 주목해 이를 다시 보도록 하는 <다큐 3일>(한국방송)의 의도와도 일맥상통합니다. 걸세도 피디가 길을 가다 만나는 사람의 소소한 경험을 중시하죠. 사람들 삶이 강팍해져 (걸세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측면도 있어요. 그래서 한편으로 (높은 시청률이) 씁쓸합니다.”(윤)
‘한국방송’ 소속 6명과 외주 피디 2명이 돌아가면서 두 달에 한편 꼴로 만든다. 기획과 촬영에 각각 2주, 편집과 원고작성 등 후반부 작업에 4주가 걸린다.
‘걸세 피디’는 방송사 안에서도 선호도가 매우 높은 보직으로 꼽힌다. 그래서 엄격한 인사 원칙을 적용한다. “한 번 거쳐가면 다시 들어올 수 없고, 전입 뒤 1년이 지나면 교체합니다.”(김) 지금은 관리만 하는 김 부장 역시 2년 전에 제작피디로 5편을 만들었을 뿐이다. <케이비에스 스페셜>과 <다큐 3일>을 제작했던 윤 피디는 올해 합류해 500회 특집편을 포함해 두 편을 만들었다.
근무 기간이 짧은 대신 피디에게 폭넓은 재량권이 주어진다. “아이템 선정은 피디가 주도적으로 합니다. 피디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면 프로그램이 잘 나오니까요.”(김) 책임피디는 시사회에서 ‘외교적 문제가 될 수 있는 실수’, 예컨대 나라 이름 표시가 잘못 나가거나, 설명이 잘못됐는지를 짚는 정도에 그친다고 했다.
“출국 때 보통 배낭 1개·캐리어 2개·트라이프드(캠코더 지지대) 1개를 가지고 나갑니다.”(윤) 촬영에 쓰는 캠코더는 채 200만원이 되지 않는다. 캠코더 영상에 불만을 나타내는 시청자는 거의 없지만 캠코더가 드론을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걸세도 재작년 11월 ‘조지아 편’(임종윤 피디)에서 첫 드론 촬영을 시도했다. “내년에 한국방송도 초고화질 화면의 유에이치디(UHD) 시범방송을 합니다. 1인 시스템이라는 프로그램 원칙을 해치지 않는 한에서 드론 영상을 제공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김) 지난 2년동안 여러차례 드론 촬영을 했지만, 강제하지는 않았다. “임종윤 피디처럼 직접 촬영한 적도 있고 촬영 전문가가 동행할 때도 있었죠. 피디 스스로 판단했어요.”(김) 윤 피디는 “장비가 많아지면 걸세만의 영상이 희석될 수 있다”고 했다. “걸세의 영상은 웅장하지는 않지만 여행객의 시선이 살아있어요. 장비가 많아지면 (영상이) 달라질 수 있어 조화가 필요한 것 같아요.”(윤)
걸세는 2007년 2월 아라비아반도 남단 예멘의 수도 사나를 찾았다. 하지만 이곳은 지금 한국인 여행금지 지역이 됐다. “걸세가 소개하면 안전한 곳이란 생각을 시청자들이 할 수 있어요. 지역 선정 때 여행에 적절한 나라인가를 먼저 살펴봅니다. 시리아를 ‘케이비에스 스페셜’에서 보여줄 수는 있지만 여행지로 소개할 수는 없지요.”(김)
요즘 브라운관엔 ‘재미’가 강조되는 외국여행 테마 프로그램이 넘친다. “걸세는 정통여행 프로그램을 추구하며 살아남았어요. 반짝 트렌드를 반영하는 예능 프로들이 10년 뒤에도 살아 남을지 의문이에요.”(김) 변화가 불필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요즘 여행 수요자들의 눈높이가 굉장히 높아졌어요. 깊은 여행정보를 제공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죠. 또 일반 정보를 원하는 층도 여전하지요. 양자의 조화가 중요합니다.”(김)
윤 피디는 지역 선정에서 새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유럽 최북단 라플란드 지역은 스웨덴·핀란드·러시아를 포괄하고 있어요. 지금의 세계 경계는 근대국가 체제 이후 만들어졌어요. 배와 같은 교통수단으로 연결되는 지역과 같이, 국경을 초월해 공간 중심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어요.”(윤) 내년초 방영 예정인 ‘다뉴브강 크루즈 편’도 이런 발상의 산물이다. 편당 국외촬영 제작비가 궁금하다. “평균 1500만원입니다. 11년 전과 변화가 없어요.”(김)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