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년 데뷔 직후 ‘발연기’ 항의도
‘거짓말’이 연기 인생 전환점
약점인 멜로연기 표현법 배워
언론학 박사 따고 고전공부도
“공부하면서 다른 세상 발견
이젠 예능이나 인터뷰 안 두려워”
‘거짓말’이 연기 인생 전환점
약점인 멜로연기 표현법 배워
언론학 박사 따고 고전공부도
“공부하면서 다른 세상 발견
이젠 예능이나 인터뷰 안 두려워”
첫 에세이집 낸, 배우 배종옥
배우 배종옥이 생애 첫 에세이집을 냈다. 제목이 <배우는 삶 배우의 삶>(마음산책)이다. 올해로 데뷔 31년인 그는 책 말미에 이렇게 썼다. “끝없이 고민하고, 공부하고 배우다 보면 정말 무엇이 중요한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뭔지 어렴풋하게 보인다. (…) 이 책은 그 고민에 대한 연대기라 하면 어떨까.” 지난 28일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공연장 ‘디시에프(DCF) 대명문화공장’에서 배종옥을 만났다.
대학 3학년(1985년) 때 ‘특채’로 탤런트가 됐다. 다음해에 한국방송 대하드라마 주인공을 맡았다. 20대 초반에 스타가 됐지만 연기는 부족했다. ‘배종옥만 나오면 채널을 돌리고 싶다’는 시청자들의 항의편지까지 받았다. 연기가 되지 않아 매일 화장실에 가서 울었다고 했다. 그리고 30여년. 그는 여전히 정상에 있다. ‘연기파 배우’라는 수식어도 얻었다. 책엔 연기를 향한 욕망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채우기 위해 그가 기울인 노력이 담담히 서술되고 있다.
멜로 연기가 특히 어려웠다. “사랑하면서도 애틋한 그런 감정 표현을 못했어요. 이걸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각했죠.” 선배 연기자 윤여정의 주선으로 드라마 <거짓말>(1998)의 노희경 작가와 표민수 피디를 직접 만나 주인공 역을 달라고 청했다. “정통 멜로를 하고 싶었어요. 젊었을 때 잘나가다 이혼 뒤(1994) 연기 공백이 있었죠. 그 뒤엔 아줌마 역만 들어왔어요.”
<거짓말>을 하면서 대사 한마디도 여러 조각으로 썰어 감정을 분석했다고 했다. 치밀하게 계산된 연기는 시청자에게 가닿았다. “<거짓말>은 배우로서 터닝포인트가 된 작품이죠. 이 작품 때문에 박찬옥 감독의 <질투는 나의 힘>에도 캐스팅되었죠.” 2010년부터는 연기 무대를 넓혀 연극에 도전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블랑쉬 역처럼 연기 공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작품을 일부러 골랐다. 그는 데뷔 이후 60편의 드라마와 14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출산과 뉴욕 유학 시간을 빼곤 늘 현장을 지켰다. “제 성향이 쉬지 못하는 것 같아요. 송강호를 보세요. 연기자는 작업을 통해 많이 큽니다. 세상이 얼마나 빨리 변합니까. (쉬면) 쫓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죠.” 다음달 막을 여는 연극 <꽃의 비밀>에선 주인공 자스민 역을 맡아 코믹 연기를 선보인다. 촬영을 마친 영화 <환절기>는 내년 개봉 예정이며, 백윤식·성동일 등이 출연하는 영화 <아리동>도 찍고 있다.
그는 언론학 박사이다. 2009년 고려대 신문방송학과에서 ‘티브이 드라마 게시판 반응과 제작구성원의 상호작용 연구’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땄다. 지금은 중국어와 고전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고 했다. 책엔 그가 재밌게 읽은 에머슨의 <자연>, 스탕달의 <적과 흑>, 레마르크의 <개선문> 후기가 나온다.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내가 모르는 다른 세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이게 연기의 기술, 방법적 측면에서 도움을 주지는 않아요. 하지만 내가 하는 작품이 세상의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아는 데 도움을 줍니다. 내 시각을 확장시켜주지요.”
인터뷰나 토크쇼를 꺼리지 않게 된 것도 공부 덕이라고 했다. “예전엔 정극이 다라고 생각했죠. 내가 잘하는 것만 하려고 했어요. 지금은 코미디나 예능도 수용할 수 있어요.” 그는 재작년 예능 프로그램 <룸메이트>로 에스비에스 예능 신인상을 받았다. “데뷔 초엔 기자들을 싫어했어요. 왜 제목을 이렇게 (사실과 다르게) 뽑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죠. 지금은 이해를 합니다. 언론을 이해하니 기자들도 이해하게 됐어요.”
그의 작품 선택 기준은 “인간, 사람, 가족에 대한 치열한 질문과 답이 있는 것”이다. “우리 드라마의 사랑에 관한 대사는 대체로 이런 식입니다. ‘난 너 사랑해, 나도 사랑해, 그래도 우리는 이런 문제가 있어.’” 치열한 문답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롤모델인 메릴 스트립이 출연한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예로 들었다. “스트립과 로버트 레드퍼드 둘 다 처음엔 결혼을 생각하지 않다 시간이 흘러 스트립이 결혼을 원하지요. 사랑과 자유를 함께 원하는 레드퍼드와, 스트립이 사랑에 대해 치열하게 대화합니다. 그런 작품을 하고 싶어요.”
책엔 이런 내용도 있다. “배우는 빛날수록 고독의 그림자가 더 깊어간다.” 그에게 그림자와 잘 지내느냐고 묻자 “잘 극복하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10년 이상 매일 108배를 하고 있다. 법륜 스님의 정토회를 통해 만난 방송계 지인들과 사회봉사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잘 나이들어가는 게 현재 나의 숙제입니다. 여배우니까 (내가 나의) 얼굴을 볼 수밖에 없어요. 맘에 안 드는 곳이 보이죠. 언제까지 뜯어고쳐야 하나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그럴 때 내 인생에서 나에게 (얼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뭔가를 생각하게 되지요.”
그에게 좋은 배우는 “그 배우가 하면 작품이 좋겠지, 그런 신뢰감을 주는 배우”이다. 그럼 나쁜 배우란? “정돈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캐릭터 안에서까지 정돈된 연기를 하는 이들입니다.” 배우여서 좋은 점은? “자유로움입니다. 작품 안에서 얼마나 자유롭습니까. 여러 다양한 역을 해볼 수 있는 그런 자유로움이지요.” 젊은이들에게 어떤 얘기를 들려주고 싶은지 청했다. “좌절하는 대신,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꾸준히 질문하는 게 필요해요. 그래야 답을 얻지 않겠어요. 제가 치열한 작품을 하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좋은 작품을 보면 사람들은 생각을 하게 되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배우 배종옥씨가 28일 오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펴낸 에세이 <배우는 삶 배우의 삶>의 집필 동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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