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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프로불편러’가 정리한 2016 방송 속 여성혐오

등록 2016-12-07 09:05수정 2016-12-07 09:44

문화 웹진 ‘아이즈’, 여성 연예인에 가해진 논란 32개 묶어
웹진 〈아이즈〉가 펴낸 2016년 한국 대중문화에 나타난 여성혐오를 정리한 책 ‘2016 여성혐오 엔터테인먼트’.
웹진 〈아이즈〉가 펴낸 2016년 한국 대중문화에 나타난 여성혐오를 정리한 책 ‘2016 여성혐오 엔터테인먼트’.
설현·지민 역사무지 논란, 설리 노브라 논란, 정가은 모유 수유 사진 논란, 하연수 불친절 답변 논란…

2016년 여성 연예인들에게 따라붙었던 각종 ‘논란’들이다. 골라낸 것만 무려 32개나 된다.

문화 웹진 〈아이즈〉(ize)가 올 한 해 한국 대중문화 속에 나타난 여성혐오 콘텐츠에 관해 정리했다. 지난 1일 〈아이즈〉는 2016년 1월부터 10월까지 각종 예능, 영화, 음악, 소셜네트워크(SNS) 등에서 벌어졌던 여성혐오에 관한 글을 엮어 핸디북 형태의 책 <2016 여성혐오 엔터테인먼트>를 발간했다.

책은 주로 티브이(TV) 속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그려지는가를 면밀히 살폈다. 그동안 태연히 벌어졌던 여성의 외모 품평이나, 여성의 신체를 성적 대상으로 한정시키는 것 등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 제기부터 여성에 대한 또 다른 ‘프레임 짓기’로 남용되는 ‘걸 크러시’ 현상까지 섬세하게 들여다봤다.

책의 맨 앞에는 ‘2016년 여성 연예인에게 가해진 논란들’이란 표를 붙였다. 표는 1월부터 10월까지 해당 시기에 논란을 빚었던 사건들을 정리했다. 이 ‘논란표’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름은 걸그룹 AOA 설현과 걸그룹 F(x)의 전 멤버인 설리다. 마치 걸그룹에 대한 미디어의 양가적 시선을 반영하듯, 이들은 관심의 인물임과 동시에 논란의 중심이 됐다. 이와 관련된 논란들은 책의 본문에서도 별도의 챕터로 다뤄진다. 걸그룹이라는 ‘극한직업’을 갖은 두 아이돌은 어떻게 ‘대중의 가장 만만한 샌드백’이 됐는지 〈아이즈〉의 글로 살펴봤다.

확실히 설현은 2016년에 큰 인기를 누렸다. 그가 모델로 활동했던 통신사의 입간판은 도난당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여러 방송에서 입간판과 몸매가 같다는 걸 증명해야 했으며, 한 CF와 관련해서는 대역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또, 방송에서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공식 사과를 하기도 했다. 책은 이를 “비난받을 만해서 비난받는 것이 아니라 비난하기 쉬워서, 비난받는다”고 꼬집었다.

설현의 뒷 모습, 특히 허리와 골반 라인을 강조한 입간판은 이른바 ‘짤’, 인터넷에 도는 한장의 이미지로 퍼지며 화제가 됐다. (중략) 설현은 미디어에서도 그 ‘짤’처럼 몸만이 집중적으로 소비되기 시작했다. 미디어가 이것을 다시 증폭시키면서 설현의 가치는 마치 몸에만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2016년 1월2일, SBS 〈토요일이 좋다〉 ‘백종원의 3대 천왕’에서는 불판 위에 삼겹살이 구워질 때 이런 자막이 나왔다. “설현 뺨치는 뒤태 좀 보소.” (중략) 한국은,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 사람의 몸을 삼겹살로 비교하는 자막을 붙여도 제작진 중 누구 하나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 설현의 몸 : 맥락이 사라진 곳을 채우는 여성의 몸

불판 위의 삼겹살을 묘사하며 ‘설현 뺨치는 뒤태 좀 보소’라는 자막을 실은 예스비에스 ‘백종원의 3대 천왕’. 사진 에스비에스 갈무리
불판 위의 삼겹살을 묘사하며 ‘설현 뺨치는 뒤태 좀 보소’라는 자막을 실은 예스비에스 ‘백종원의 3대 천왕’. 사진 에스비에스 갈무리

온스타일 〈채널 AOA〉는 설현과 지민이 안중근 의사의 얼굴을 모르는 것을 그대로 방영했다. (중략) 역사 지식은 누군가를, 특히 젊은 여성을 꾸짖거나 개탄하는 데 가장 좋은 소재가 된다. 어느 예능 프로그램도 중년의 인기 배우에게 역사 지식을 묻거나, 그것을 모른다고 비웃지 않는다. 비난받을 만해서 비난받는 것이 아니라 비난하기 쉬워서, 비난받고 있으니까 비난받는다.

- 걸 그룹의 발언 : 설현과 지민이 무슨 죄를 지었나

14살 연상과의 공개연애, 스스럼없는 사생활 공개, 노브라 사진 등 설리의 사생활은 각종 ’논란’이라는 이름으로 자주 대중에 공개됐다. 정작 그는 이런 각종 논란에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아이즈〉는 설리의 그 모습이 “예상치 못한 균열”을 가져왔으며, “지금 자신의 인생을 태연하게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한국이라는 세상에 맞서”게 됐다고 평가한다.

설리가 SNS에 올리는 수많은 행동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교정’의 대상이 된다. 설리가 최자와의 일상을 올리거나 클럽에서 춤을 추는, 아이돌로서는 조금이라도 튀는 행동을 보여주면 곧바로 비난이 이어진다. 하지만 설리는 어떤 대응도 하지 않았고, 이 과정은 계속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급기야 트레이닝복 속에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도 비난의 대상이 됐다.

‘노브라 논란’을 일으켰던 설리의 인스타그램 사진. 사진 설리 인스타그램
‘노브라 논란’을 일으켰던 설리의 인스타그램 사진. 사진 설리 인스타그램

지금 설리는 하나의 리트머스처럼 작용하는 존재다. 설리의 행동과 그에 대한 반응들은 지금 한국이 여성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는지 민망할 만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중략) 늘 당연한 듯 성애화되는 존재였던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수동/무해/순결’ 등의 규범을 무시한 채 자신의 의지로 성적인 어필을 한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올리고 싶은 사진을 올린다. 이것이 불편하다면, 그리고 기어이 사과를 받아내고 싶다면 잘못된 쪽은 어디인가

- 설리의 인스타그램 : Bad girl can go everywhere

‘송곳처럼 뚫고 나온’ 여성의 모습들도 있었다. 엠비시(MBC) 〈일밤〉 ‘진짜 사나이 2’에 출연해 남다른 체력과 태도를 보여준 이시영과 각종 예능에서 그의 독특함으로 ‘걸 크러시’를 ‘크러시’(깨부수다)한 김연경이다.

여성도 얼마든지 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시선 속에서도, 이시영은 자신의 페이스를 잃지 않는다. (중략) 똑똑한 데다 체력적으로 뛰어나고, 굳이 직책을 맡지 않아도 좋은 리더이자 든든한 동료로 활약하는 이시영의 모습은 김연아나 김연경이 그렇듯 특히 여성들의 심장을 뛰게 만든다. 이시영은 지금, 복싱 선수로서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진짜 사나이 2’에서 자연스럽게 제일 돋보이는 출연자가 됐다

- 센 여자 : 이시영, 강한 여성의 위엄

엠비시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배구선수 김연경. 사진 엠비시 갈무리
엠비시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배구선수 김연경. 사진 엠비시 갈무리

김연경은 터키로 출국하기 전 시간을 쪼개 공항에서 자신의 팬클럽인 ‘연경홀릭’ 여성 팬들과 팬 미팅을 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동안 실체 없이 소비되던 걸 크러쉬라는 개념이 예능, 아니 방송을 통틀어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난 순간일 것이다. 여성에 열광하는 여성, 그리고 그런 열광을 진심으로 즐길 줄 아는 여성. 많은 연예인이 여성과 여성 사이의 감정적 교류를 콘셉추얼한 차원으로만 국한시키기 위해 ‘걸 크러쉬’ 개념 뒤에 숨었다면, 김연경은 자신의 인기에 당혹해 하지도 뭐라고 부연하거나 단서를 달지도 않는다.

-뉴타입 : 김연경, 한국 예능에 대한 크러쉬

32개의 글들은 짧다. 그러나 깊다. 남들 다 웃을 때, ‘나만 예민한 건가’ 생각했던 지점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아이즈〉는 머리말에서 “처음부터 이 책을 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템을 내고 글을 쓰다 보니 여성혐오를 가히 엔터테인먼트라고 할 만큼 소비하고 즐기는 대중문화 현상에 대해 책 한 권이 될 정도로 많이 다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여성혐오 엔터테인먼트가 갑자기 많아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2016년은 수없이 많이 존재해왔던 여성혐오를 ‘자각하는 해’라고 평가했다.

책에는 〈아이즈〉 편집부 8명과 외부 필진 7명 등 총 15명의 필진이 참여했다. 책의 맨 뒤에는 ‘페미니즘 즐기기’(Enjoy Feminism)란 부록을 붙여, 여성주의를 다룬 최신 외국 드라마, 웹툰, 책들을 소개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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