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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섹시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등록 2017-01-20 16:22수정 2017-01-20 20:48

[토요판] 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마돈나

지난 연말, 신디 로퍼를 다룬 칼럼에서 미리 예고했었다. 1980년대 팝계에서 그의 라이벌이었던 마돈나를 꼭 다루겠다고. 그리고 그날 시골 음반가게와 사촌형과 얽힌 슬픈 이야기도 마저 풀어놓겠노라고.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궁금하신 분은 신디 로퍼 편을 찾아보시길.

그때도 말했지만, 마돈나와 신디 로퍼가 라이벌 구도를 이루었던 기간은 몹시 짧았다. 80년대 중반에 화려하게 불타오르고 사라졌던 신디 로퍼와 달리 마돈나는 도대체 전성기를 어디서부터 어디라고 꼽아야 할지 모를 정도로 오랜 기간 인기를 누렸으니까. 유명세, 음반 판매량, 공연의 관객동원 수 등 아티스트의 대중적 성공을 판가름하는 모든 잣대에서 신디 로퍼는 마돈나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오직 추억의 영역에서만 그들은 라이벌이었던 것처럼 느낄 뿐이다. 몇몇 아재들이 강수지와 하수빈이 라이벌이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추억하는 것처럼.

그는 뮤지션으로 출발할 때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그의 데뷔 시절을 그저 섹시한 비주얼 위주의 댄스 가수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큰 착각이다. 메이저 데뷔 전에 그는 자기 이름을 딴 ‘마돈나’라는 록밴드를 결성해 활동하기도 했고 그때부터 직접 노래를 쓰고 다양한 팝 분야를 파고들었다. 물론 그 중심에는 댄스뮤직이라는, 그의 육체적 매력을 극대화시킨 장르가 있었지만.

1983년에 데뷔 음반 <마돈나>를 발표하자마자 그는 스타로 부상했고 길고 긴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대중의 관심 밖으로 멀어진 적이 없었다. 히트곡은 너무 많으니 언급을 생략한다. 단순한 인기뿐만이 아니다. 음악적으로 그가 이룬 성과는 연구 대상일 정도로 엄청나다. 야성적인 목소리와 관능적인 육체라는, 타고난 무기를 양손에 들고 팝음악이라는 정글을 누비는 여전사를 떠올리면 어떨까. 뮤직비디오 전성시대를 상징하는 아티스트로서도 그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 정도로 만족하지 않고 아예 영화배우로 데뷔해 주연까지 맡아서 해내기도 했으니, 80년대 이후 대중예술 분야 전체를 놓고 보면 그만큼 재능을 인정받은 아티스트는 열 손가락을 채우기 어렵다고 본다.

스타의 사생활이 반드시 떠들썩할 필요는 없지만, 그의 경우 언급하지 않고 지나가면 섭섭할 정도로 굉장하다. 마돈나는 그 유명한 58년 개띠다. 올해 60살이 되셨고, 대통령을 두 번이나 하고 물러난 오바마 대통령보다 한참 누님이신데, 며칠 전에 30살 연하의 남자친구를 공개했다. 으응? 명배우 숀 펜, 영화감독 가이 리치와 결혼했다가 이혼했으며 연애 상대로는 전설적인 야구선수 알렉스 로드리게스, 배우 워런 비티, 흑인 로커 레니 크래비츠 외 손에 꼽을 수도 없는 숱한 ‘셀럽’들이 있다. 쉰살을 넘긴 후에는 주로 20, 30대 젊은 모델과 댄서들을 남자친구로 두었고, 얼마 전에는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나이 들지 마세요. 그것은 범죄입니다.”

지난달 미국 <빌보드>지가 주관하는 한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으로 한 말이다. 그 자리에서 이런 말도 남겼다.

“34년간 노골적인 성차별과 여성혐오, 끝없는 조롱에 맞서 싸운 나를 인정해줘서 고맙다.”

이쯤 되면 그가 가수인지, 사랑꾼인지, 페미니스트인지 헛갈린다. 아마도 그 모두였을 것이다. 섹시하다는 표현은 그에게 붙이기에 너무 초라하다. 그의 진짜 위대함은 편견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줄 아는 용기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그의 용기가 부러워 커피가 넘어가지 않을 지경이다.

아, 시골 마을의 레코드 가게 얘기는 어떻게 되었냐고? 내 고향 울진에서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사촌형이 ‘목마 레코드’를 오픈했고 나는 그곳에서 팝음악에 눈을 떴다는 이야기까지는 지난 편에서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나는 서울로 올라왔고 매년 명절 때 울진을 찾았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 때, 드디어 목마 레코드의 턴테이블에 내가 직접 고른 레코드판을 올리고 내 손으로 노래를 틀 수 있도록 사촌형이 허락해주었다. 고백하건대, 방송국 피디로서의 꿈과 소양은 바로 그 순간 발아를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었다.

하지만 사촌형의 목마 레코드는 오래가지 못했다. 엠피스리(MP3)가 발명되면서 전국적으로 음반 가게는 아예 자취를 감추었고 목마 레코드도 목마 노래방으로 업종이 바뀌었다가 결국은 박인환의 시처럼, 주인을 버리고 숙녀를 태운 채 떠나가 버렸다. 그리고 ‘똘똘한 사촌 동생’에게 그저 팝음악뿐만이 아니라 그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베풀어 준 형은 점점 더 늙고 외로워졌고, 지금도 시골 마을의 작은 방에 홀로 머물고 있다.

형을 떠올릴 때마다 늘 빚진 기분이다. 그런데 명절 때 내려가 고작 용돈이나 주는 것 외에, 어떻게 빚을 갚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마돈나의 용기를 부러워하기 전에 당장 형에게 전화부터 해야겠다. 이 칼럼을 꼭 읽어보라고. 그때 가게에서 음악을 틀게 해줘서 정말 고마웠다고.

이재익 <에스비에스>(SBS)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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