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만 수백만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 <미움받을 용기>가 드라마화됐다. 국내에서도 최장기 베스트셀러 기록을 세우며 아들러 심리학 열풍을 몰고 온 책이다. 지난 12일부터 후지티브이에서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는 별다른 서사가 없는 원작을 수사미스터리물로 풀어내 눈길을 끈다. 경시청 형사부 수사1과를 배경으로 매회 다른 사건이 전개되는 가운데 주인공과 범죄자들의 심리를 통해 원작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주인공 안도 란코(가리나)는 독보적인 검거율을 자랑하는 능력 있는 수사관이다. 하지만 협업은커녕 수사회의도 불필요하다고 여기고 독자적인 수사 방식을 고수하는 통에 조직 내에서는 눈엣가시처럼 여겨진다. 또 다른 주인공 아오야마 도시오(가토 시게아키)는 어린 시절부터 형사를 동경해 온 신참으로 따뜻하지만 우유부단한 성격이다. 수사1과에 배속되자마자 모두가 기피했던 안도와 파트너가 된 아오야마는 그녀의 독불장군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해 애를 먹는다. 그 와중에 떠오르는 패션잡지 모델들이 기묘한 방식으로 죽음을 맞는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아오야마는 안도와 함께 수사에 나선다.
드라마에서 원작의 내용을 옮겨온 부분은 아오야마와 경시청 자문인 범죄심리학 교수 다이몬지(시이나 깃페이)가 나누는 대화다. 안도가 조직에 민폐를 끼치는 이기적 존재라 생각하는 아오야마에게 다이몬지가 아들러 심리학을 통해 일깨워주는 새로운 인식의 틀은 원작 속 청년과 학자의 대화를 반영한 것이다. 다이몬지는 아오야마의 우유부단함이 지나치게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는 데서 비롯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미움받을 용기’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관점에서 보면 안도는 이기적인 독불장군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솔직한 신념을 따라가는 ‘아들러인’ 그 자체였다.
드라마는 아들러 심리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보여주기보다는 기존에 지적된 장단점을 그대로 반복한다. 무한경쟁과 인정투쟁에 고통받는 조직사회 내의 개체들에게 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용기를 일깨워주면서도 모든 문제를 강한 자아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의 한계가 되풀이된다. 드라마를 흥미롭게 하는 것은 이러한 심리학적 교훈보다는 오히려 여성 원톱물로서의 서사적 매력이다. 안도 캐릭터는 감정노동을 거부하는 슈퍼히로인이라는 점에서 <파견의 품격>이나 <가정부 미타>의 주인공 계보를 연상시키고, 이를 통해 남성 중심 조직이 유능하고 무뚝뚝한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을 읽는 것도 재미있는 지점이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