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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죽을 때까지 질리지 않을 노래 - 아하

등록 2017-02-10 14:12수정 2017-02-10 20:40

[토요판] 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마돈나와 신디로퍼를 소개할 때부터 다음에 소개할 팝스타는 정해져 있었다. 역시 1980년대를 풍미한 노르웨이 출신의 팀 아하(A-Ha).

우리 아재, 언니들이 아하를 추억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노래는 당연히 ‘테이크 온 미’(Take on me)다. 나 역시 고향 울진에서 사촌형이 하던 목마레코드에서 이 노래를 듣고 귀가 쫑긋, 눈이 반짝 했다. 아니 무슨 이런 세상 탄산수 다 모아놓은 것 같은 청량함이 있나?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청량함이라는 단어를 몰랐을 테고, 청량음료의 맛을 떠올렸겠지. 지금까지 수백 번은 더 들었을, 내가 방송에서 튼 것만 열 번은 넘는 이 노래는 요즘도 유리잔에 얼음 꽉 채워 마시는 콜라를 연상케한다.

아하의 멤버는 모두 세 명. 보컬리스트 모튼 하켓(Morten Harket), 기타와 키보드를 연주하는 폴 왁타(Paul Waaktaar), 그리고 키보디스트인 맥스 후르뎀(Magne Furuholmen). 스웨덴에는 아바라도 있었지. 당시 노르웨이는 팝음악계에서 변방 중의 변방이었다. 팝스타가 되겠다고 의기투합한 후 영국으로 건너간 세 젊은이는 연이어 실패를 맛보아야만 했다. 워너브러더스와 계약하고 ‘테이크 온 미’를 발표하고도 이들에게는 초라한 성적표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하가 데뷔와 동시에 바로 스타가 된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1983년 가을, ‘테이크 온 미’가 처음 발표되었을 때의 판매량은 겨우 수백장 수준! 1985년 봄에 다시 재발매를 했지만 역시 반응은 미미했다. 두 번이나 쓰러졌던 이 노래를, 팝스타의 꿈을 접기 직전의 노르웨이 청년들을 되살려준 심폐소생술은 뮤직비디오였다. 뒤늦게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찍은 ‘테이크 온 미’ 뮤직비디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덩달아 판매고도 급상승해서 결국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차지해버렸다. 혹시 아직 이 뮤비를 못 본 분이 있다면 팝 역사상 가장 유명한 뮤직비디오 중 하나이니, 꼭 찾아보시길. 이 노래뿐만 아니라 ‘선 올웨이즈 샤인 온 티비’(The Sun Always Shines On TV) 같은 오페라 팝까지 싣고 있는 데뷔음반도 엄청나게 팔려나갔다.

결론적으로, 그 뒤로 이어진 길고 긴 음악활동을 통털어 데뷔곡 ‘테이크 온 미’를 넘어서는 성공은 없었다. 그러나 아하를 이 노래 한 곡의 영광만으로 먹고 살았던 반짝 가수로 치부한다면, 스티브 잡스를 그저 아이폰 만든 아저씨 정도로 평가하는 것만큼이나 부당한 일이다. 아하는 수많은 히트 싱글을 만들어냈고, 80년대 신스팝의 슈퍼스타였다. 당대의 최고 가수들에게만 영예가 돌아간다는 ‘007 시리즈’ 중 <리빙 데이라이츠>(Living Daylights) 편의 주제가를 맡기도 했다. 최근에 아델과 샘 스미스가 ‘007 시리즈’의 주제가를 불렀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당시 아하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크라이 울프’(Cry Wolf), ‘맨하탄 스카이라인’(Manhattan Skyline), ‘터치’(Touchy), ‘크라잉 인 더 레인’(Crying in the Rain)…, 당장 꼽아봐도 열 곡은 훌쩍 넘는 히트곡들 말고, 아하 팬이 아니라면 모를 노래를 강력 추천한다. ‘아이브 빈 루징 유’(I've been losing you). 개인적으로는 데뷔음반보다 더 좋아하는 2집에 수록된 곡인데, 이 글을 쓰면서 들어보고 또 놀랐다. 이 노래가 30년도 더 전에 나왔다고? 곡 자체 뿐 아니라 창법과 녹음 상태, 심지어 효과음들까지도 너무나 세련되었다. 작년 여름에 나온 노래라고 해도 믿겠다. 비틀즈나 레드 제플린의 음악을 요즘 들어도 좋다고 하는 것과 다른 의미다. 많은 이들이 ‘테이크 온 미’를 부른 옛날 아이돌 가수 정도로 알고 있는 아하가, 이 정도였다!

한 가지 더. 아하 이야기를 하면서 보컬인 모튼 하켓을 따로 언급하지 않으면 섭섭하지. 그는 음성과 창법 모두 독창적이고 독보적이다. 비슷하게 묶을 수 있는 가수가 없다.

1980년대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아하를 말할 때면 항상 어디선가 누군가 이런 소릴 한다.

에이, 그래도 듀란듀란이 낫지.”

나도 듀란듀란을 광적으로 좋아한다. 아하보다 두 세배쯤 더 많이 들었다. 그러나 듀란듀란에는 모튼 하켓이 없다. 리드보컬인 사이몬 형님한테는 죄송하지만, 좋은 보컬리스트의 모든 조건에 있어서 모튼 하켓에게 역부족이다. 결정적으로 모튼 하켓의 미모에서 게임 끝.

보컬리스트로서 음악적 역량이 성숙해질 대로 성숙해진, 나이로도 환갑이 눈앞인 모튼 하켓에게 ‘테이크 온 미’같은 하이틴 취향의 신스팝을 35년 넘게 부르는 일은 고역일 것 같기도 한데, 최근 영국의 유명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그가 흥미로운 발언을 했다. 이 노래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영향을 받아 만들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테이크 온 미’를 부를 것이고, 사람들도 지겨워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정말? 짜라투스트라 관련 발언은 의심할 수밖에 없고, 그 뒤의 발언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음 칼럼에서는 듀란듀란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기대하시라.

이재익 <에스비에스>(SBS)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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