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달콤한 스파이’ 의 최불암…한물간 조폭 보스 역으로 변신
스타일 구긴 거 아니냐고 물었다. “조금 구겼지. 파하~” 예의 그 최불암 웃음이 터져나온다. 지난 7일 시작한 문화방송 <달콤한 스파이>에서 최불암은 이른바 ‘연기 변신’을 했다. 옛 부하에게 얹혀 사는 범구파 보스 출신 최범구. 돈도, 힘도 없지만 왕년의 호기는 남아 늘 폼 잡을 준비가 돼 있는 블랙 코미디에 나올 법한 인물이다. 게다가 “옷 벗고, 방귀 끼고…”, 있는 스타일 없는 스타일 다 구긴다.
“3회(14일치)에서 옷을 벗어. 때밀이 장면인데. 사람 수십 명이 있는 사우나에서 옷 벗고 찍었어. 거참. 늙은이는 배가, 나오는 게 아니라 늘어지는 데 말야.”
‘소탈한 스타일’로 잘 알려져 있는 그이지만, 방귀끼는 장면까지 내보내는 것에 대해선 못마땅해했다. “찜질방에서 방귀를 껴서 사람들이 다 나가버리는 건데, 아니 안방에 들어가는 드라마에서 이런 장면을 내보내는 건 아닌 것 같아.” 기품을 중시하는 오래 묵은 정통 연기자의 모습이다. 그래도 “인이 배겨서 연기 안 하면 갈증이 온다”는 그는 프로페셔널이다. 덧붙이는 말엔 웃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다 뀌긴 꼈수.”
한국 탤런트들의 대부인 그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남상미에 대해 칭찬했다. 듣자하니 진심이 읽힌다. 구체적일뿐더러 연기에 임하는 자세를 높이 샀기 때문이다. “옛날 최진실 같아. 요즘 탤런트들은 (코디·매니저 등) 5~6명씩 달라붙어 다니면서 호들갑 떨고 거만을 떠는데. 남상미는 거울도 안 보고 붙는 사람도 없더라니까. 쉬는 시간에도 늘 차분히 대본이나 책 읽으면서 준비하고 있더라고.”
요즘 연기자들의 태도에 대한 엄중한 비판의 뜻도 담고 있다. 그가 꽃 피워온 세월과 한참 달라져 있는 것이 못내 아쉬운가 보다. 연기자들이 연기의 맛을 알던 시절이 그리워 보였다. 연극배우 출신들이 안방극장을 주름 잡던 시절, 연기는 땀과 눈물로 이뤄지던 것이다. 캐스팅되면 인물에 대한 취재와 분석을 먼저 시작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지게꾼이 지게를 어떻게 지는지 알아? 나도 정주영 회장한테 들었는데, 목힘으로 지는 거야. 그래서 늙은 지겟꾼 목뒷덜미를 보면, 청자 갈라지듯 갈라져 있어. 그래서 그렇게 분장을 해달라고 하기도 했지. 지게꾼의 이런 디테일한 것까지 취재하면서 다녔거든.”
최근 세상을 달리한 정애란씨 이야기로 이어진다. “어제 빈소에 다녀왔어. ‘아! 한 시대가 가고 또 다른 시대가 오는구나. 그래도 태양은 떠오른다’고 되뇌여지더라고. 영정 사진에도 앞 머리를 내려 애교머리를 만든 진짜 배우신데. <전원일기> 속에서 돌아가시길 원했는데….”
인터뷰 내내 ‘우리 엠비시(MBC)’라는 말이 떠나질 않았다. “1979년 엠비시가 여의도로 올 때 같이 이사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을”만큼 크고 깊은 애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전원일기> <수사반장> 등 장수한 효자 프로그램, 문화방송을 ‘드라마 왕국’으로 일군 드라마의 주인공이 그다. 그만큼 현재 어려움을 겪는 문화방송에 대한 비판도 혹독했다.
“너무 젊은 세대에만 포커스를 맞춰. 드라마는 가벼운 재미보다는 삶의 정서를 아름답게 담아내야 하는데 말이야. 달콤·새콤한 얘기는 이제 그만하고, 남녀노소 누구나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드라마를 만들어야 해.”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너무 젊은 세대에만 포커스를 맞춰. 드라마는 가벼운 재미보다는 삶의 정서를 아름답게 담아내야 하는데 말이야. 달콤·새콤한 얘기는 이제 그만하고, 남녀노소 누구나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드라마를 만들어야 해.”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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