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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금기에 도전하는 ‘반트럼프적’ 가족극

등록 2017-05-26 20:50수정 2017-05-26 20:53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미국드라마 <트랜스페어런트>

엄마와 이혼 뒤 혼자 살던 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온다. 가족들에게 할 말이 있다는 전화에 자녀들은 지레 겁부터 먹는다. 70대 나이인 만큼 심각한 병은 아닐까 걱정도 된다. 하지만 막상 모인 자식들은 아버지는 뒷전이고 서로 티격태격 싸우다 시간을 다 보낸다. 아버지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을 다문다. 자녀들을 모두 돌려보낸 뒤, 혼자 남은 아버지는 옷을 갈아입는다. 머리를 풀어헤치자 치렁치렁한 장발이 어깨까지 늘어진다. 그가 방금 전 자녀들 앞에서 하고 싶었던 것은 자신이 트랜스젠더라는 커밍아웃이었다.

‘모던 패밀리’를 다루는 미국 드라마 안에서 성소수자 이슈는 더는 비주류적 소재가 아니다. 1인가구가 주류 가구유형이 된 시대에도 가족물은 미국 사회의 축소판으로서 다양한 변화를 끌어안으며 꾸준히 진화해왔다. 2014년부터 방영을 시작한 아마존프라임의 웹드라마 <트랜스페어런트>는 그 가족극 진화의 최전선에 위치한 작품이다.

일흔살 전까지 성정체성을 숨긴 채 성실한 가장으로 살아온 트랜스젠더를 주인공으로 내세웠고, 동성연인과 결혼해 입양아를 공동양육하는 레즈비언이 또다른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성정체성 문제에서부터 성적 욕망에 대한 끊임없는 실험과 마약까지 다루는 이 드라마를 두고 비평가들은 ‘현대 가족의 모든 금기를 건드린다’고 호평했다. 실제로 방영된 해부터 에미상, 골든글로브상 등을 휩쓸며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들과 함께 웹드라마의 위상을 드높인 주역이 됐다. 물론 다른 한편에서는 전위적이기까지 한 설정을 두고 ‘퀴어 힙스터’라는 반쯤 비아냥 섞인 평가도 따라붙는다.

그러나 <트랜스페어런트>가 이 급진적인 소재를 결코 표피적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주인공 모라 페퍼먼(제프리 탬버)이 오랜 세월 동안 커밍아웃하지 않았던 이유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신중한 고민 때문이기도 한 것처럼, 이 드라마는 사회의 편견에 맞서 행동할 뿐 아니라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실존적 질문을 던지는 주요 인물들을 통해 공감을 이끌어낸다. 모라는 커밍아웃 뒤에도 엘지비티(LGBT) 공동체 활동을 통해서 억압과 싸울 힘을 얻고, 레즈비언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왔던 장녀 세라(에이미 랜데커)는 이혼, 동성결혼 등으로 혼란을 직접 돌파해나가며, 역시 성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막내 알리(개비 호프먼)는 성정치학을 공부하며 답을 찾아간다.

<트랜스페어런트>는 트럼프 시대를 맞아, 방영된 해보다 오히려 더 주목을 받고 있다. 그동안 시스젠더 배우가 트랜스젠더를 연기한다는 것에 대한 논란을 이끌어낼 정도로 대중문화의 성소수자 이슈를 확장시킨 이 ‘반트럼프적’ 가족극이 곧 방영될 시즌4에서는 또 어떤 새로운 질문을 던질지 궁금해진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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