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전업주부 사이조 기누카(이시다 히카리)의 삶은 완벽해 보인다. 넓은 정원이 딸린 고급저택, 유능하고 자상한 남편과의 안정적인 부부관계 등 보통의 중산층 가족이 부러워할 만한 조건을 두루 갖췄다. 어느 날 옛 연인 세노 이쓰키(이마이 쓰바사)가 18년 만에 그녀 앞에 나타나고 이 평온한 일상에는 커다란 균열이 생긴다. 과거 말 한마디 없이 갑자기 사라졌던 이쓰키는 빚 때문에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며 다락방으로 숨어들고, 기누카는 두려움과 불안과 미련이 뒤섞인 복잡한 심경으로 아래층의 일상을 유지하려 애쓴다.
일본 도카이 티브이에서 방영 중인 토요 심야드라마 <다락방의 연인>은 얼핏 줄거리만 보면 진부한 불륜 드라마 같다. 실제로 완벽한 가족의 어두운 이면, 즉 외도하는 남편, 고독과 욕구불만에 시달리는 아내, 그 틈을 파고든 옛 연인과의 재회 등의 설정은 불륜극의 흔한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기누카의 분열적인 내면에 초점을 맞추며 억눌린 중년 여성의 위태로운 심리스릴러를 구축해나간다. 도입부의 정원 파티 장면에서 손님들을 우아하고 친절하게 접대하던 기누카가 겉모습과 전혀 다른 속내를 들려주는 내레이션부터 섬뜩하다. 그 속마음은 속물적인 친구 스가누마 교코(미우라 리에코)나 60대의 나이에도 화려하고 자유분방한 삶을 추구하는 시어머니 사이조 지즈코(다카하타 아쓰코)에 대한 경멸과 경계 등 뒤틀린 감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타인에 대한 경멸이 실은 기누카의 자기혐오적 감정이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부터 극의 긴장감은 본격적으로 팽팽해진다. 그녀는 전업주부인 자신을 무시하는 교코의 위선, 남편을 향한 지즈코의 집착, 남편의 외도 등을 모두 눈치채고 있으면서도 진실을 외면하며 쇼윈도처럼 전시된 장식적 삶을 유지하려 애쓴다. 이쓰키의 등장은 그 화려한 쇼윈도의 판타지 뒤에 숨어 있던 어둠의 진실 속으로 기누카를 끌고 들어간다.
<다락방의 연인>이 묘사하는 공포에는 연출을 맡은 일본 호러의 거장 나카타 히데오의 세계관이 어김없이 반영되어 있다. 익숙한 일상의 이면에 잠재된 눅진한 공포의 근원을 파헤쳐 들어가는 나카타 히데오는 이 작품에서도 기혼 여성의 소외된 내면에 자리한 불안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분명 기누카를 대하는 이쓰키의 태도나 기누카의 과거를 둘러싼 미스터리 등 여성혐오적이고 여성학대적인 묘사들도 적지 않지만 사회적 폭력으로 인한 깊은 우물 같은 기누카의 어둠을 끝까지 들여다보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 다락방에서 떨어져 내린 핏방울이 기누카의 얼굴에 자국을 남기는 장면에서는 이혼 여성이 겪는 근원적 공포를 그려냈던 영화 <검은 물 밑에서>의 검은 물 자국이 떠오르기도 한다. 가수 보아가 부른 주제곡의 익숙한 목소리도 반갑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