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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내년에는 ‘마린보이’-고 정성은 피디를 추억함

등록 2017-06-29 13:49수정 2017-06-29 21:33

[박상혁의 예능in 예능人]
17년 전 고 정성은 피디(왼쪽)가 했던 도전예능, 리얼예능, 관찰예능, 오디션은 그 이후 모두 ‘대세’가 되었다.  박상혁 피디 제공
17년 전 고 정성은 피디(왼쪽)가 했던 도전예능, 리얼예능, 관찰예능, 오디션은 그 이후 모두 ‘대세’가 되었다. 박상혁 피디 제공
여러분들이 잘 모를 수도 있는 피디 한 명을 소개하려고 한다. <에스비에스>(SBS) 예능국에서 근무했던 고 정성은(1970~2007년) 피디다. 지난 월요일(6월26일)은 형이 저세상으로 간 지 10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이 형 이야기를 하려면 <에스비에스>의 <20년 전의 약속-대한해협 횡단>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1980년, 역시 지금은 고인이 된 수영 영웅 조오련은 대한해협을 혼자 헤엄쳐 건넜다. 그리고 20년 뒤에 꼭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2000년 여름, 조오련의 약속을 지키려고 최종원, 유정현, 이훈, 걸그룹 베이비복스, 그리고 당시에는 신인이었던 수영선수 출신의 소지섭이 경남 거제시 장승포 서이말 등대에서 대마도까지 75㎞를 수영으로 건너는 초대형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그 당시로는 정말 혁명적인 프로그램이었다. 연예인뿐 아니라 18명의 일반인 도전자를 오디션으로 선발했다. 수영을 전혀 못하는 출연자도 있었는데 수영장에서 조금씩 실력을 늘리고 그다음은 한강을 건너고 다시 바다 수영과 야간 수영에 도전했다. 당연히 엄청난 연습이 필요했다. 도전과 좌절 그리고 성공을 향한 피나는 노력의 과정을 웃음기 싹 빼고 다큐멘터리처럼 진지하게 담았다.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었던 고 노무현 대통령도 적극 지원했다.

프로그램의 압권은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횡단에 도전한 날, 태풍을 만나 약 25㎞를 남기고 철수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다시 도전해서 18시간11분 만에 극적으로 대한해협 횡단에 성공했다. 믿을 수 없는 도전에 시청자들은 열광했고 당시 시청률 꼴찌를 면치 못하던 <에스비에스> 일요 예능을 단번에 1등으로 만들었다. 정성은 피디는 이 작품으로 이듬해인 2001년 한국방송대상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그 이후에도 정성은 피디는 강호동의 첫 <에스비에스> 프로그램이었던 <뷰티풀 선데이>와 <대한해협 횡단>의 시즌2 격이었던 <통일바닷길 종단>, 서울대생과 문제 여고생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남녀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관찰형식으로 보여줬던 <극적남녀>, 창업 아이디어 오디션을 다룬 <청년시대> 등을 기획·연출했다.

그리고 2007년, 남녀의 서로 다른 연애심리를 다룬 <연애(愛)인>이라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나서 휴가차 제주도에 갔다. 그곳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다가 그만 사고를 당하고 만다. 그 형의 유작이 된 <연애인>은 얼마 뒤 다른 피디가 맡아서 <연애시대>란 제목으로 정규편성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고집불통인 형이었다. 도저히 혼자 할 수 없는 분량의 촬영을 하고 그걸 또 혼자 편집했다. 주변 사람의 말을 잘 듣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다혈질이고 즉흥적이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열정적이었고 무엇보다 ‘훌륭한 피디’였다. 17년 전에 형이 시도했던 도전예능, 리얼예능, 관찰예능, 오디션은 그 이후 모두 대세가 되었다.

형이 제주도 여행을 떠나기 전날, 나에게 기획서 하나를 보여줬다. 제목은 <마린보이>였다. 남자들이 남태평양의 어느 섬에 가서 커다란 물고기를 잡는 프로그램이었다. 자신은 바다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꼭 <마린보이>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형은 좋아하던 바다에서 죽었고 <마린보이>는 탄생하지 못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 형과 가장 오래 일했던 두 명의 후배가 공교롭게도 각각 바다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연출하고 있다. 나는 <연애인>의 메인작가와 함께 <올리브채널>에서 <섬총사>를 만들고 있고, 또 다른 한명인 이영준 피디는 <에스비에스>에서 김병만과 <주먹 쥐고 뱃고동>을 만든다. 아마 우리들의 마음속에 그 형이 지워지지 않았던 것 같다. 혹시 내년 여름쯤에 우리들 중 누군가가 만든 <마린보이>를 볼 수 있다면 참 즐거울 것 같다.

박상혁 올리브채널 <섬총사>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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