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은 배우 강동원이 출연을 결정하면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박근혜 정권 시절 블랙리스트에 오를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한 소신 덕분에 30년 전 민주항쟁이 다시 살아나는 데 큰 힘을 보탰다.
이종석과 이순재도 좋은 작품 살리기에 나섰다. 이종석은 <에스비에스>(SBS)에서 준비 중인 2부작 드라마 <사의 찬미>에 노개런티로 출연한다. 이른바 ‘톱배우’가 단막극에 나오는 사례는 드물다. 출연료를 받지 않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 이종석의 소속사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 홍보담당자는 15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를 공동 연출한 박수진 피디와 친분도 있고, 단막극 활성화를 위한 선택이었던 만큼 출연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사의 찬미> 제작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단막극은 미니시리즈에 견줘 열악하다. <사의 찬미>는 극작가 김우진과 소프라노 윤심덕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이종석은 김우진으로 출연한다. 윤심덕은 신혜선이 맡았다.
7년 만에 영화에 출연하는 이순재도 “돈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 4월5일 개봉하는 <덕구>(감독 방수인) 출연료를 받지 않았다. <덕구>는 죽음을 앞두고 할아버지가 세상에 남겨질 손자를 위해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는 이야기다. 이순재는 노인이 중심이 된 영화가 거의 없고 상업적인 영화들 사이에서 감동이 큰 작품이라는 데 의미를 뒀다고 한다. 그는 14일 제작보고회에서 “연기자는 돈을 많이 받고 성공하거나, 작품을 살리고 자기 연기를 빛내는 두 가지 길이 있다”며 “<덕구>는 시나리오가 너무 좋아서 작품을 살리고 연기를 하는 게 중요했다”고 말했다. 함께 출연하는 장광, 성병숙, 차순배 등 모든 성인 배우들도 노개런티로 참여했다.
배우가 합당한 출연료를 받는 건 당연하고 중요한 일이지만, 때론 배우들의 이런 결정이 문화적인 다양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작품성이 뛰어나더라도 상업성이 없으면 기획안 자체가 사장되는 경우가 많은데 스타들이 출연한다고 하면 사실상 100% 제작된다”며 “이종석·이순재 두 배우의 선의가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탄생하는 계기를 마련해줬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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