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장시스템서 색깔 못내” 분석에
“시청자 변화 못읽은 탓” 지적도 이른바 ‘스타 피디’들의 위기가 거론되고 있다. 90년대 드라마 중흥기를 이끌며 영광의 ‘별’을 달았던 피디들이 최근 시청률과 작품성 양쪽에서 모두 참패를 거듭하고 있어서다. 위기의 진원지는 주로 에스비에스 드라마다. <세잎 클로버> 연출자 장용우 피디가 최근 중도 하차했고, 20회 예정이었던 이창순 피디의 <유리화>는 2회 단축돼 3일 종영한다. 장 피디는 <왕초> <나쁜 친구들> <호텔리어> 등 선굵은 흥행작들을 줄줄이 만들어냈고, 이 피디는 <애인> <신데렐라> 등으로 정통 멜로의 감성을 잘 구현해냈다는 호평을 받아온 스타급 피디들이다. 전체 20부작 가운데 4회를 끝으로 장 피디가 교체된 것이 공식적으론 건강 때문이라지만, 내내 한자릿수를 기록한 시청률 탓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유리화>의 조기 종영도 제작사 쪽은 “일본 방송 일정을 맞추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갈수록 떨어지는 시청률에 의혹의 시선이 꽂히지 않을 수 없다. 기획부터 ‘한류’를 겨냥해 만들었다는 문화방송 <슬픈 연가>도 시청률 성적이 좋지 못한데, 2003년 <올인>으로 스타덤에 오른 유철용 피디가 연출을 맡고 있다. <별은 내가슴에>와 <천국의 계단> 등으로 높은 인기를 끌었던 이진석·이장수 피디의 공동 연출작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도 예상보다 흥행이 저조했다는 평가다. 원인은 피디 쪽과 드라마 제작 시스템 양쪽에서 찾을 수 있다. 시대 변화에 발맞추지 못한 스타 피디들에게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 쪽엔 피디들이 개성적인 빛깔과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는 ‘공장식 드라마 제조시스템’이 낳은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에스비에스의 한 관계자는 “피디들이 시시각각 변하는 시청자들의 입맛을 제대로 알아채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새로 치고 올라오는 피디들은 새 촬영 기법, 신선한 기획으로 시청자들 눈높이에 맞게 다가가 성공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리화> <슬픈 연가>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 등은 멜로 드라마의 전형적인 흥행 공식에 충실하지만, 시청자들의 예상에서 벗어나지 못해 ‘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타 피디들의 과거 명성과 인맥은 스타급 연기자들의 섭외에는 큰 도움이 됐지만, 출연자의 인지도에만 과도하게 기댄 결과 시청자들의 극에 대한 집중도는 도리어 낮아졌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드라마 제작시스템이 스타 피디의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도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예전엔 방송사가 직접 드라마를 제작하면서 스타 피디의 역량이 구상·기획·제작 작업을 통해 바로바로 드라마에 투여될 수 있었지만, 요즘은 외주사와 연기자 소속사의 주도로 드라마가 기획·제작되면서 피디가 제 색깔을 낼 수 있는 여지가 좁아졌다는 것이다. 흥행만 염두에 두고 드라마 기획에 나선 제작사들이 연출자는 비싼 돈 주고 유명 피디로 채워넣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단순한 인식이 문제의 발단이다. 공장 물건 찍듯 드라마를 만드는 제작시스템이 피디의 구실과 역량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요즘 공장기술자와 다를 바 없는 피디에게 드라마의 완성도와 흥행 결과의 모든 책임을 묻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고 “시청률만을 잣대로 작품의 성패를 논하는 방송사 구조가 드라마 발전에 큰 장애가 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고 꼬집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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