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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드라마 한 편으로 영국 정치·사회 문제 ‘완전정복’?

등록 2018-05-11 19:26수정 2018-05-11 19:49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영국드라마 ‘콜래트럴’
사진 비비시(BBC)
사진 비비시(BBC)

런던 동남부의 한 주택가, 심야 피자 배달을 하던 청년이 급작스러운 총격으로 사망한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의문점과 용의자는 점점 늘어난다. 사건 당일, 배달 순서를 갑자기 바꿔 지시한 가게 매니저 로리(헤일리 스콰이어스), 무언가를 자꾸만 숨기는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주문자 캐런(빌리 파이퍼), 약물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목격자 린(카에 알렉산더), 피해자 사망 소식을 듣고도 동요하지 않는 유족 등 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담당 형사 킵 글래스피(캐리 멀리건)는 현장에서 전문 저격수의 흔적을 발견하고 이것이 단순 살인이 아님을 확신한다.

<비비시>(BBC)가 제작한 4부작 미니시리즈 <콜래트럴>(원제 ‘Collateral’)은 근래 영국에서 방영된 드라마 중 가장 흥미로운 작품이다. 주요 플롯은 한 청년의 살인 사건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치는 범죄수사물의 공식을 따르고 있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현재의 영국을 관통하고 있는 온갖 정치사회적 문제가 총집결된 시사물에 가깝기 때문이다. 제일 두드러지는 이슈는 브렉시트 이후 더 심화되고 있는 인종 갈등이다. 드라마에서 이 문제는 피해자의 신원을 둘러싼 영국 내 여론 변화 묘사에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피해자 압둘라 아시프(샘 오토)가 시리아에서 온 정치적 망명자로 알려지자 동정이 대다수였던 여론은 얼마 뒤 그의 진짜 정체가 이라크에서 온 ‘경제적 이주자’임이 드러나자 혐오로 돌변한다. 유족들은 곧바로 난민 수용시설에 격리되고 사건의 진실은 은폐될 위기에 놓인다.

실제로 <콜래트럴>이 공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영국에서는 이민자 강제 추방 계획인 ‘윈드러시 스캔들’이 불거져 국제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윈드러시 세대’는 2차 대전 직후 카리브해 연안 식민지 국가에서 영국으로 건너온 이주민들로, 전후 경제 재건에 주축을 담당했다. 하지만 영국 내 반이민 정서가 확산되면서 대다수가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없게 됐다. 이로 인한 갈등은 테리사 메이 총리 측근인 앰버 러드 내무장관이 ‘윈드러시의 10%를 강제 추방하겠다’고 보고한 사실이 폭로되면서 절정에 달했다. 메이 정부는 뒤늦게 파키스탄 이민가정 출신 사지드 자비드를 새 내무장관으로 임명하는 등 스캔들 진화에 나섰으나, 영국 사회의 인종 갈등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는지를 증명하는 단적인 사례다.

<콜래트럴>에서 아시프의 유족들이 수용시설에서 만난 한 이주민의 사연은 바로 이 갈등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녀는 3살 때부터 영국에서 살았지만 모친이 사망하자마자 증빙서류에 문제가 생기며 시설로 옮겨졌다. 30년 넘게 불법 체류한 셈이 된 그녀는 ‘말이 보호소지, 수용 기간이 정해진 감옥보다 못한 곳’이라며 난민 인권 실태를 비판한다. 주요 인물인 노동당 하원의원 데이비드 마스(존 심)도 드라마적 주제를 강조한다. ‘영국이 벽을 높이 쌓을수록 결국 시대의 변화에 뒤처질 것’이라 경고한 그의 말은 마지막 냉전의 벽을 허물고 새로운 역사로 나아가야 하는 이곳에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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