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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우리 함께 만들어봐요, ‘처세술’ 필요없는 직장

등록 2018-10-29 05:01수정 2018-10-29 18:02

KBS ‘회사가기 싫어’가 말하는 직장 처세술
직장인 현실담은 모큐멘터리로 공감 줘
사원들에겐 내 얘기 쓰담쓰담
간부들에겐 그러지마~ 정보제공

SNS, 세컨드 계정을 만들어라
부장의 관심 회피엔 ‘회사용’ 제격
단톡방 실수? 방 이름·배경 바꾸자

당신의 회식, 위치가 좌우한다
최상석 오른쪽 구석이 바로 명당
건배사, 회식 정말 싫다는 방증

오늘도 회사 가기 싫은 당신에게 그동안 드라마들은 ‘너무’했다. 사표를 던지고 로망을 실현하라고 했고(<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참지 말고 부장한테 대들라고도 했다.(<욱씨남정기>)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인성부터 일처리까지 완벽한 상사(<미생>)를 등장시키며 대리만족을 줬다. 제작자들은 “오피스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해 공감을 사야 하고 판타지를 심어 대리만족을 줘야 성공한다”고 입을 모으지만 티브이를 끄는 순간 다시 시작되는 현실에 공허함도 함께 커진다. 현실에서 사표 던지고, 부장한테 막말했다가는 백수 혹은 백조되기 딱 좋다.

24일 끝난 6부작 모큐멘터리(드라마+다큐) <회사가기 싫어>(한국방송2)는 현실적인 조언으로 직장인들을 위로해 눈길을 끌었다.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 이상, 참고 그냥 다녀라”고 말한다. 소심하고, 비굴한 ‘내’가 정상이라고, 대한민국 직장인 1680만명 모두 그렇게 산다고 안심시킨다. 더럽고 아니꼬워도 회사를 다녀야 하는 당신을 위한 진짜 처세술은 이 프로그램에 다 있다.

사원들의 마음을 보듬는 이야기였지만, 달리 말하면, 간부들에게 보내는 ‘경고’일 수도 있다. 사원들이 어떤 걸 싫어하는지 눈여겨 보고, 제발 아래같은 처세술이 필요없는 회사를 만들어달라!

‘회사 가기 싫어’의 한 장면. 화면 갈무리
‘회사 가기 싫어’의 한 장면. 화면 갈무리

■ 넵!넵!넵! ‘넵무새’가 돼라?(*속풀이/제발 ‘넵’할일 좀 만들지 맙시다)

지금껏 오피스 드라마들은 부당한 일을 시키는 상사들에게 ‘욱’하라고 가르쳤다. 노노! 현실에선 절대 안 된다. 집이 부자거나, 매달 나가는 카드값이 없어야 가능하다. <회사 가기 싫어>는 ‘넵무새’가 되라고 말한다. ‘넵’과 ‘앵무새’의 합성어로 넵만 반복하는 직장인을 일컫는 신조어다. 예를 들어 단체카톡(단톡방)에 커피 4잔을 사주고 9명이 나눠 마시게 하고도 “커피 잘 마셨냐”고 물어보면 “넵”이라고 해야 한다. “네엡” “넵~~~”도 괜찮다. 시큰둥해 보이는 ‘네’만 안 하면 된다. 박창식 브랜드 디자이너는 프로그램에서 “역사 속에서 사노비들의 ‘예이~’라고 대답하던 것이 복종의 의미에 귀여움을 더한 형태의 ‘넵’으로 발전됐다”고 말했다. 그래, 우리는 직장의 노예 아니던가. ‘넵’은 내가 원하지 않지만 강하게 동의해야 하는 문제에 주로 사용한다. 그러니 간부들이여 사원들이 ‘넵’이라고 하면, 자신의 지시를 다시한번 돌아보도록.

■ 세컨드 계정을 만들어라(*속풀이/제발 공과 사 분리해주세요!)

에스엔에스(사회관계망서비스)는 사회생활의 핵심이 됐다. 기업 인지도 향상을 위한 회사 홍보 방안 1위가 에스엔에스(31%)다. 동시에 사생활 침해도 늘었다. 에스엔에스로 주말에 뭘 했는지, 어디에 갔는지 부장이 다 들여다본다. “어, 유진씨 친구랑 워터파크 갔구나” “양 과장 애기들 많이 컸네” 하…. 팔로 하라는데 안 할 수도 없고. 드라마라면 “이건 사생활 침해입니다” 목소리 높였겠지만, 현실에선 입이 안 떨어진다. 노노! 걱정하지 마라. <회사 가기 싫어>는 계정을 두개 만들라고 말한다. 하나는 진짜 개인 계정이고, 하나는 회사 사람들이 다 친구맺기를 하는 보여주기용이다. 세컨드 계정을 운영하면 여우 짓도 해라. 주말에 회사에서 일하는 사진을 일부러 올리면, 부장이 칭찬한다. “어, 정 대리 주말에도 회사 나왔네. 역시 정 대리. 기억하겠어!” 부장님이 계산할 때, 소고기를 사줄 때 반드시 사진도 찍어 올려라. #부장님사랑해요.

‘회사 가기 싫어’의 한 장면. 화면 갈무리
‘회사 가기 싫어’의 한 장면. 화면 갈무리

■ 단톡방에 부장 욕? 이렇게 대처하라(*속풀이/단톡방 좀 그만 만듭시다!)

부장 있는 방, 팀장 있는 방…, 회사 관련 단톡방만 수십개다. 순간의 방심이 에스엔에스상에서는 대형 실수가 된다. 프로필 사진을 사훈으로 바꾸라는 이사의 말에 모두들 “넵” “네~옙” 대답 잘해놓고는 방을 헷갈린다. “솔직히 사훈보다 짤 올리는 게 좋지 않아요?” “엌 망했다” 그래, 당신 망했다. “죄송합니다” 백배사죄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이런 실수, 안하는 게 상책이다. <회사 가기 싫어>의 꿀팁은 요긴하다. 이름 설정을 회사 서열 중심으로 바꿔라. 그 방의 최고 서열자를 적는 거다. ‘부장님 계신 방’, ‘이사님 계신 방’, ‘과장님과 뽀시래기들’ 등등. 단톡방마다 배경화면을 다르게 하는 것도 실수 방지법이다. 잠수타고 싶을 때는 휴대전화를 비행기 모드로 해놓고 확인하라. 상대에게 ‘1’ 표시가 사라지지 않는다.

■ 연차 작전! 1주 전부터 아픈척 해라(*속풀이/휴가, 그냥 쓰게 해달라!)

법정 연차일수 15일. 자신의 연차휴가를 모두 사용한 직장인은 32%에 불과하다. 업무가 많아서(34%), 상사와 동료 눈치 보여서(30%) 맘 편히 쓰기도 힘들다. <회사 가기 싫어>는 연차 작전을 제안한다. 예상 연차일 1주일 전부터 초췌한 모습을 각인시킨 다음, 쉬고 싶다고 하면, ‘아 얘가 아팠었지’ 착각하게 된다. 부모님이 아파서 병원에 모시고 가야한다거나, 시골에서 부모님이 올라오신다는 핑계도 진부하지만 먹힌다. 은행 대출상담 핑계도 좋다. 단, ‘뻥’도 잘 쳐야 한다. 여행 일정표 프린트하다가 걸렸다가는 한동안 연차는 꿈도 못 꾼다. 헉. 벌써 걸렸다고? 실망 마라. 2044년에는 10월1일부터 10일까지 추석 연휴 포함해 무려 10일간의 황금 연휴가 기다린다.

■ 사람 스트레스? 유형을 익혀라(*속풀이/일 좀 공평하게 맡겨주세요!)

직장인 스트레스 요인 1위는 사람(48.2%)이다. 직장내 인간관계 만족도는 회사 업무에 영향을 준다.(91.4%) 일만 잘하면 되는 회사에서 왜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까. 어쩔 수 없다. 여우 같은 애도, 꼼수 부리는 애도, 부당한 상사도 일, 같이 해야 한다. <회사 가기 싫어>는 사람 성향을 파악해서 적절히 대응하면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일 욕심 많고 추진력 강한 ‘주도형’은 그의 힘과 권위를 인정해주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지나치게 존중하는 ‘안정형’에게는 오히려 먼저 물어봐야 한다. “네”라는 대답이 진짜 “네”가 아닐 수도 있다. 근거를 중시하는 ‘분석형’에게는 조목조목 명확하게 말하는 게 중요하다. 스트레스 받는다고, 충동구매는 노노! 이를 ‘X발 비용’이라고 하는데, 소비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은 안 된단다. 이럴 때는 생활비와 월급 통장을 분리하고, 체크카드로 잔고 내에서만 사용하면 좋다.

‘회사 가기 싫어’의 한 장면. 화면 갈무리
‘회사 가기 싫어’의 한 장면. 화면 갈무리

■ 회식, 눈에 안 띄는 자리를 찾자(*속풀이/회식 그만! 건배사 그만!)

계속 회식하자는 간부들에게 ‘노!’ 라고 할 수 없다면 그냥 가서 마음껏 즐겨라. 회식, 자리부터 잘 찾는 게 중요하다. 출입문 마주보고 벽에 기댈 수 있는 ‘최상석’은 그 자리 최고 직급 자리다. 이사님이 앉았다면 그 맞은 편 ‘차상석’은 부장 자리, 최상석 옆에는 과장 둘이 앉으면 된다. 아, 이사도 부장도 피하고 싶다면 가장 왼쪽 귀퉁이, 최상석 오른쪽 구석 자리에 앉으면 된다. 아무도 관심을 안 준다. 회식 분위기를 좌우하는 건배사는 기본으로 익혀라. 이황근 <대통령 건배사> 저자는 프로그램에서 “건배사가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주는 몸짓이라고” 했다. 막내들은 ‘당나귀’가 좋다. 당신과 나의 귀한 만남? 노노! 당/당연히 첫잔은 원샷이겠죠? 뱐샷 안돼요! 반샷 안돼요! 나/나 지금 귀/귀여우면 원샷!

■ 퇴사 시그널 감지(*속풀이/있을 때 잘하세요!)

그래도 못 참는 ‘퇴준생’은 어김없이 나온다. 입금하자마자 월급이 로그아웃되고, 시어머니보다 부장님 잔소리가 더 심한 직장살이, 별 이야기도 안하면서 회의에 회의를 반복하는 회의주의자 상사도 퇴준생을 만드는 데 한몫한다. 눈여겨보면 보인다. 근태 소홀(43.5%)하거나, 개인 물품을 정리(17.%1)하거나, 매사 허허실실(16.5%)하는 사람도 퇴사 시그널이다. 퇴사를 결심했다면 사표만 던지지 말고 속시원하게 한번 질러도 좋다. 남아 있는 동료를 위해서. “일은 많이 시키면서 월급은 뭐같이 주고! 퇴근도 못 하고 야근만 시키고 야 부장 너 나와!”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이선희 피디
이선희 피디

KBS 가능성 보여준 ‘회사 가기 싫어’

‘웃픈’ 직장인들의 삶…어느 틈에 끄덕끄덕
드라마에 다큐 접목…감각적 만듦새로 공감 불러

<한국방송2>(KBS2)의 6부작 모큐멘터리 <회사 가기 싫어>(9월12일~10월24일)는 시청률은 1% 남짓이었지만, 만듦새는 감각적이고 뛰어나다. 모큐멘터리는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를 접목한 형식이다. 한다스라는 작은 문구회사를 배경으로 비정규직, 회식 문화 등 직장인이 겪는 이야기를 담아 공감과 재미를 함께 줬다.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를 토대로 드라마를 구성했고, 전문가 취재와 사연자 인터뷰 등 다큐멘터리 기법을 접목했다. 이선희 피디는 “노동 관련 프로그램을 하자고 확정된 상태에서 이를 어떻게 풀지 고민하다가 모큐멘터리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모든 대사, 장면이 다 사실을 기반으로 했다. 지난 5~8월 4개월간 실제 직장인 50명 이상을 만나 사례를 모았다. 유민상이 점심 때 사무실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 장면과 유튜버 씬님이 택시에서 화장하는 장면만 과장했다. 이 피디는 “사무실 면벽 빼곡하게 포스트잇에 사례를 적어놓고 씨줄날줄 엮듯이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했다. 2004년 입사한 이선희 피디는 임신, 육아 등으로 6년간 제작부서를 떠나 있다가 이 프로그램으로 메인 연출로 입봉했다. 그는 아이가 아픈 데도 회사일 때문에 가지 못 하는 사례 등은 실제 자신도 겪은 이야기라고 했다. “비정규직 문제 등을 따로 깊게 다루지 못한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대부분 연기 잘하는 연극배우들로 현실감을 살렸다.

<회사 가기 싫어>는 젊은층에 다가가기 위한 <한국방송>의 새로운 시도다. 다큐 피디와 예능 피디가 함께 손잡고 만든 제대로 된 콜라보 시도다. 이선희 피디는 예능국에서 이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다큐팀으로 옮겼다.

인기에 힘입어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선희 피디는 “다음 시리즈도 모두 현실에 바탕을 둘 것이다. ‘우리가 몇날 며칠 밤을 새도 이렇게 기가 막힌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머릿속 이야기보다 현실이 더 강력하다는 게 쓸씁하기도 하면서 현실만큼 독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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