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방송·연예

‘역사스페셜’ 의 한민족 중심주의 안타깝다

등록 2005-12-28 18:11수정 2005-12-29 15:22

이야기TV
한국방송 <에이치디(HD) 역사스페셜>이 접근하는 우리 역사는 새롭고 흥미로운 부분이 많아서, 시청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를테면 백제의 하남 위례성일 가능성을 보여준 ‘풍납토성’ 편은 한국의 트로이를 상상하게 만들고, 전북 익산의 ‘왕릉리 석탑’ 편에서는 신라탑에 백제 금강경이 담긴 비밀스런 사연을 알려 주며, 일본의 백제 부흥 전쟁인 ‘백촌강 전투’ 편에서는 백제와 일본과의 내밀한 관계를 가르친다.

그런데 <역사스페셜>를 보면서 가끔 우리가 ‘강대국 컴플렉스’나 ‘단일 민족 컴플렉스’ ‘한민족 중심주의’를 강하게 가진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긴다. 이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현재의 ‘한민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한민족’의 역사와 영광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고대사를 다루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광개토대왕’ 편에서는 마치 고구려가 동아시아의 최강국이며 당시 로마제국의 군사적 위상에 필적하는 나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광개토대왕의 정복사업이 가능했던 것은 고구려 군대가 강하기도 했지만, 당시 중국이 한족의 남조와 5호16국의 북조로 분열돼 서로 싸우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보면 고구려의 위상은 당시 중국 동북부의 한 패자였던 북위와 겨루는 그런 수준이었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역사스페셜>은 발해를 고구려를 계승한 한민족 국가로 설정하고 그 역사를 온전히 우리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시도도 보여 준다. 물론 발해 역사에 우리 민족(의 조상)이 참여한 것은 분명하지만, 말갈이나 다른 계통의 민족도 그만큼 중요하게 존재했음을 인정하는 것이 더 공정할 것이다. 실제로 발해가 거란의 공격을 받아 멸망한 뒤 일부는 거란에, 일부는 고려에 흡수됐으며, 일부는 흑룡강가에 남아 금나라의 원류인 말갈(여진)을 형성하게 된다.

우리는 지난해 중국의 동북공정이라는 작업을 통해 중국이 주변 소수민족의 역사를 모두 자신들의 지방민족 역사로 편입하려는 불순한 시도를 보고 분노한 바가 있다. 이것에 대해 우리는 중국 학자들이 현재의 국가·영토·민족 관념을 고대 역사에 투영함으로써 ‘환원주의의 오류’에 빠졌다는 지적을 했다. 그러나 <역사스페셜>에서도 이런 오류가 종종 나타난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의 과민함일까?

과도한 민족 관념을 버리고 보면 고대 역사는 훨씬 더 자유롭고 다채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를테면 고구려는 예맥족과 패려(거란), 숙신(말갈·여진) 민족 등으로 이뤄진 복합 민족국가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 적지 않은 역사책들은 당시 백제가 고구려·신라보다는 왜와 종족·문화적으로 더 가까운 나라였음을 보여 준다. 또 가야는 가야인과 왜인이 뒤섞여 살고 있던 나라였다. 지금의 일본은 우리와 엄연히 다른 민족이지만, 고대 백제나 가야 사람의 눈으로 보면 왜는 같거나 가까운 민족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우리는 광대한 영토를 정복한 고구려를 선망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당나라의 힘을 빌려 고구려를 무너뜨린 뒤 그 영토를 거의 차지하지 못한 신라인의 시각이 아닐까 의심해 본다. 혹시 ‘민족’과 ‘국가’를 하나의 고정불변한 것으로 보는 현대의 ‘민족주의’가 우리의 눈을 흐리게 하는 것은 아닐지. 역사학자 크로체가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말한 바로 그 맥락에서 <역사스페셜>이 고대사를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