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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임신을 다루는 꽤 독특한 방식

등록 2019-10-18 19:17수정 2019-10-18 19:21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프랑스 드라마 <룰루, 프렌치 걸>
30살의 비혼 여성 룰루(루이즈 마생)는 어느 날 임신테스트기의 선명한 두 줄을 확인하고 놀란다. 친구들의 만류에도 큰 고민 없이 아이를 낳기로 하지만, 룰루는 곧 자신의 삶이 앞으로 완전히 달라질 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저 하루하루 충동적으로 사는 데 익숙했던 룰루의 삶은 임신을 계기로 뒤바뀐다. 담배, 술, 섹스 등 룰루가 제일 좋아했던 것들에는 이제 안녕을 고해야 한다. 대신 ‘계획, 준비, 예비’ 등 룰루와 가장 거리가 멀었던 단어들이 하루아침에 그의 일상을 지배한다. 친구들이 룰루를 도우려 애쓰지만, 그들 역시 답이 없는 사람들이긴 마찬가지다. 그들 중 그나마 침착해 보이는 룰루의 남자친구에게도 숨겨진 고민이 있다.

아르테 프랑스가 제작한 웹드라마 <룰루, 프렌치 걸>(원제 ‘룰루, 작은 씨앗’)은 예정에 없던 임신을 마주하게 된 한 여성의 일상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최근 들어 임신과 출산이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 여성의 시점으로 그리는 작품이 많아졌지만, 아직도 많은 드라마에서 임신이란 소재는 마지막 회에 모든 갈등을 봉합하는 수단으로 그려지곤 한다. 이런 가운데 <룰루, 프렌치 걸>이 임신을 다루는 방식은 꽤 독특하다. 룰루는 말 그대로 대책 없는 캐릭터다. 늘 취하거나 미친 듯 보이는 오프닝만 봐도 그의 성격이 한눈에 드러난다. 임신 사실을 깨닫고 출산을 결정하는 과정도 한없이 즉흥적으로 보인다. 오죽하면 하나같이 나사가 조금씩 풀려 보이는 친구들조차 아이는 장난감이 아니라고 말릴 정도다.

코미디 장르가 흔히 그러하듯이, 시작은 어설프고 미숙하더라도 점점 엄마로서 성장할 것이라 여기는 시청자들의 예상도 시원하게 빗나간다. 마지막 회까지, 룰루는 그저 룰루다. <룰루, 프렌치 걸>이 인상적인 대목은 바로 여기에 있다. 룰루는 그렇게, 아이를 가진 즉시 여성을 엄마로 인식하는 사회적 통념을 멋지게 배반한다. 주연이자 각본가인 루이즈 마생의 자전적 경험이 압축적으로 담긴 이 작품은 전적으로 룰루의 심리에만 초점을 맞춘다. 아이의 생부이자 함께 양육을 담당할 남자친구가 있지만, 룰루의 행보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룰루의 관심은 훌륭한 아내나 엄마가 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임신이 가져온 몸과 마음과 일상의 변화에 있다.

생각해보면 <룰루, 프렌치 걸>의 이러한 장점은 프랑스라는 국가의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프랑스는 저조한 출생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대대적인 지원을 할 뿐 아니라, 비혼 동거 커플을 가족으로 인정하고,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등 가족의 다양성을 고려하는 나라다. 최근에는 동성 배우자 가정과 비혼 여성에게도 인공수정을 허용하는 법안을 논의하고 있다. 룰루가 철저하게 자신의 변화에만 신경 쓸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사회문화적 토대가 밑받침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한국 번역 제목이 ‘프렌치 걸’인 이유도 납득된다.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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