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용준(맨 왼쪽)은 일찌감치 <태왕사신기>의 주인공인 광개토대왕 담덕 역으로 낙점됐으며, 최근 <연개소문>의 두 주인공 연개소문 장군과 아내 홍화부인 역으로 유동근-전인화 부부(가운데)가 캐스팅됐다. 송일국(맨 오른쪽)은 <삼한지>의 주인공 주몽 역 물망에 올랐으나 출연 제의를 거절했다. 한국방송·에스비에스 등 제공.
주몽·광개토대왕·연개소문등 고구려 배경 작품 줄이어
중국 동북공정 반작용으로 기획…사료 부족·강대국 콤플렉스 극복 관심
중국 동북공정 반작용으로 기획…사료 부족·강대국 콤플렉스 극복 관심
역사 드라마가 올해도 붐을 이어간다. 1990년대 중후반, 기존 트렌디·가족 드라마와 차별화된 색다른 이야기 전개와 볼거리 등으로 급부상한 역사 드라마가 대중의 폭발적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초반이었다. 물꼬는 83년 나란히 전파를 탄 한국방송 <개국>과 문화방송 <조선왕조 500년-추동궁 마마>가 텄다. 과거 야사 중심에서 정사 위주로 돌아와 남성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두 드라마 모두 이성계의 회군과 혁명, 새 왕조 탄생의 필연성을 강조해, 5공 정권의 쿠데타를 통한 정권 탈취를 정당화했다는 불명예도 받았다. 이처럼 역사 드라마는 여느 방송 프로그램보다 쉽게 정치·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거나 좌우돼 왔다. 역사 드라마의 무게감이 다른 장르와 다른 이유다.
그럼에도 고대사의 극화는 쉽지 않은 작업이다. 지난해 <불멸의 이순신>처럼, 조선시대를 담은 역사 드라마만 해도 잘못된 고증과 이에 따른 역사 왜곡 논란이 늘 따라다녔다. 아시아 곳곳에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 <대장금>의 경우 조선시대 생활사에 상상력을 가미해 성공했지만, 많은 부분이 허구였기에 고증에 대한 시비는 상대적으로 덜할 수 있었다. 이렇게 볼 때, 올해 잇따를 고대사 드라마는 두가지 어려움을 모두 안고 갈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빈약한 사료와 이에 따라 첨가하지 않을 수 없는 작가적 상상력, 두가지 모두에 발목 잡힐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분방한 작가 정신이 현대적 감수성을 투과해 높은 완성도라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지만, 정치사를 담기에 허구의 한계는 터무니 없이 비좁고, 작가의 역사관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기에는 위험이 뒤따른다는 딜레마다. 더구나 고대사 드라마의 기획이 중국 동북공정의 자극에서 촉발됐다는 점에 우려가 적지 않다. 고구려를 비롯해, 동명성왕이나 광개토대왕, 연개소문, 대조영은 ‘민족의 영웅’, ‘민족적 자긍심’, ‘민족의 진취적 기상’ 등 민족주의적 이미지에 닿아 있다. 중국 등 큰 이웃나라와 맞서 이겨온 과거에 대한 ‘향수’가 오늘날의 ‘강대국 컴플렉스’를 자극하는 방향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걱정이다. 이런 방향으로 작가적 시각이 투영된다면, 학설이 정립되지 않은 과거를 들어 오늘날 한국사회의 ‘한민족중심주의’를 부추킬 수 있다. 이는 드라마의 상업성과도 맥을 함께 한다. 거대한 자본을 투여한 까닭에 충분한 시청률을 담보하기 위해선,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선정적 민족주의에 기댈 가능성이 높다. 드라마의 소재가 확대되면서 시청자들의 볼거리가 다양해지는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역사 드라마가 지닌 영향력을 생각할 때 철저한 고증과 균형잡힌 역사 인식의 중요성은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국사학자들을 비롯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영호 인하대 교수(국사학)는 “고대사는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를 드라마로 만들면 작가적 상상력과 역사관으로 보충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런 까닭에 고구려·발해사를 다루는 드라마가 국수주의·민족주의·국가주의적으로 흐를 위험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오늘날 민족국가 개념이 2000년 전과 다르며, 학계에서도 민족 형성 과정을 논의할 때 현재와 같은 민족 의식은 일러야 고려말, 조선초에 형성됐다고 보고 있다”며 “역사 드라마를 단순한 민족 중심적 시각에서 접근한다면 적지 않은 오류와 문제점이 돌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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