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방송의 ‘놀면 뭐하니’ 속 한 장면. 문화방송 제공
닭을 튀긴다. 기름에 튀기는데 뭔들 맛이 없겠는가. 그런데 마냥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튀김옷은 너무 두껍고, 밑간이 잘 안 돼 닭 비린내가 난단다. 양념치킨은 재료로 쓴 고추장·케첩·물엿 맛이 날 것 그대로 혀를 때린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화방송>(MBC) 토요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의 ‘닭터유’ 프로젝트는 치킨 만들기에 나선 유재석과 박명수의 좌충우돌 도전을 그린다. 트로트 가수 ‘유산슬’ 등에 이어 새로운 ‘부캐’(부캐릭터) 닭터유로 변신한 유재석은 닭을 튀기고, 도우미인 전직 닭집 사장 박명수는 유재석의 튀김닭에 양념을 입힌다.
이들이 만든 치킨 맛은 서서히 자리를 잡아간다. 튀김옷이 얇아지고 간도 적당해진다. 양념치킨 역시 붉은 양념이 눅진하게 배어든 먹음직스러운 모습으로 침샘을 자극한다. 이름난 치킨집 운영자에게 비법을 배운 결과다. 평가도 나쁘지 않다. “파는 것 같아요.” ‘먹방 유튜버’ 쯔양의 말이다.
방송은 치킨을 만드는 두 사람의 성장기를 유쾌하게 담고 있지만, 기획 의도는 따로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를 돕자는 것. 제작진은 방송에서 ‘갑자기 왜 치킨을 만들어야 하느냐’고 묻는 유재석에게 “3월에만 문을 닫은 치킨집이 100군데가 넘는다”고 설명한다. 방송을 통해 치킨 소비를 촉진해 어려움에 빠진 자영업자를 돕자는 뜻이다.
문화방송 ‘끼리끼리’의 한 장면. 문화방송 제공
바야흐로 ‘착한 예능’ 전성시대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감했지만, 경제 위기라는 후폭풍이 몰려오면서 어려움에 처한 서민을 위로하고 ‘착한 소비’를 유도하는 시도가 예능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놀면 뭐하니?>가 자영업자에 주목했다면, 같은 방송사의 <끼리끼리>는 코로나19로 판매처가 줄어 매출이 급감한 농가의 어려움에 집중한다. 지난 1월부터 매주 일요일 방송 중인 이 예능은 여러 출연자가 다양한 미션을 수행하며 웃음을 주는 게 기본 콘셉트지만, 지난달 26일부터는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은 ‘농어촌 돕기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박명수, 장성규, 은지원, 인피니트 성규, 인교진, 하승진 등은 경기, 전남, 충남 등의 농가를 찾아 일손을 돕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해당 농산물을 홈쇼핑 채널에서 직접 팔며 ‘착한 소비’를 이끌고 있다.
에스비에스 ‘맛남의 광장’ 속 한 장면. 에스비에스 제공
<에스비에스>(SBS) 목요 예능 <맛남의 광장>도 비슷하다. 지난달 23일 방송에서 백종원과 김동준 등 출연진은 전남 해남을 찾아 왕고구마 판매에 어려움을 겪는 농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 과정에서 백종원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에게 부탁해 판로 지원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같은 날 방송된 <엠비엔>(MBN) 예능 <지구방위대>에서도 김구라, 박휘순 등이 코로나19로 졸업·입학식이 취소되면서 위기를 겪는 화훼농가의 일손을 돕고, ‘플라워 버킷 챌린지’(꽃바구니 릴레이 구매 캠페인)를 벌였다.
코로나19발 불황의 시대에 ‘착한 예능’이 주목받는 것은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선결제 운동, 꽃 정기구독 등 ‘착한 소비운동’이 확산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이들 예능이 담고 있는 휴머니즘이 사회적 거리두기와 불황 등에 지친 삶을 위로하고 공감과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문화방송 ‘끼리끼리’ 출연진은 홈쇼핑에 나와 해당 농산물 판매에도 적극 나섰다. 화면 갈무리
더욱이 방송의 선한 영향력은 시청자의 동참도 끌어내고 있다. 치킨과 꽃의 경우, 코로나19 이후 소비량 변화를 가늠해볼 공식 통계는 없지만, 실제로 방송 뒤 에스엔에스(SNS)에는 방송을 보고 치킨을 주문했다는 인증 글이 이어졌다. 한국육계협회 관계자는 “자영업자뿐 아니라 급식 중단으로 닭고기 소비가 크게 감소하면서 농가들도 피해를 호소하는 상황에서, 방송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한 대형 가맹점 치킨 관계자도 “코로나19 안정화와 봄철이라는 계절적 요인 등 따져야 할 변수가 많지만, 방송이 매출에 일부 도움이 되고 있다”고 짚었다. 방송을 통해 신세계그룹이 판로를 마련한 해남 왕고구마는 판매 엿새 만인 지난달 28일, 고구마 300t이 이마트 등에서 모두 팔렸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