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흔적 밴 민중 노래들 속으로
22일 밤 10시에 전파를 탄 교육방송 <스페이스 공감>은 80년대에 찍어 놓은 빛바랜 사진첩을 다시 열어 보는 듯한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꽃보다 아름다운 노래’라는 이름으로 민중가요를 소개하는 기획 시리즈였는데, 그 처음이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었다.
방송에서 보기 힘들었던 노찾사의 선율은 잊혀질 듯한 젊은 날의 기억과 열정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한 줄기 강물로 흘러/고된 땀방울 함께 흘러/드넓은 평화의 바다에/정의의 물결 넘치는 곳’의 낮은 선율 속에서 전태일의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그 아픈 추억도/아 아 짧았던 내 젊음도/헛된 꿈이 아니었으리’라고 목이 터져라 부르는 부분에선 형제(노동자)를 위해 평화시장 앞에서 자신을 불사르기 직전의 전태일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노찾사는 <그날이 오면>이라는 노래를 통해 ‘죽은 전태일’을 ‘우리 곁에 살아 있는 전태일’로 만든 셈이다.
<사계>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광야에서> <동지를 위하여> 등 이젠 민중가요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그들의 노래에선 김광석, 안치환, 권진원의 목소리가 배어나왔다.
단발머리, 뿔테안경, 다소 촌스럽던 옷, 리더싱어 없이 같이 일렬로 늘어선 채 부르는 그네들의 스타일도 옛날과 크게 달라지지 않아 보였다. 다만 멀리 떨어져 그들의 면면을 자세히 볼 수 없었던 공연과 달리 티브이에 그들이 노래 부르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좋았다. 노래는 옛날과 다를 바 없었지만 티브이를 통해 비쳐진 그네들 얼굴에선 세월의 흐름도 느낄 수 있었다.
오는 2월 중순에는 투쟁의 현장에서 함께 부르던 노래를 내놓았던 ‘꽃다지’ 공연이 방송된다. <노래여 우리의 삶이여>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하지 않았네> 등 노동자의 목소리를 실은 힘찬 노래와 팍팍한 노동자의 삶을 담은 서정적인 노래들이 선보인다.
노찾사, 꽃다지에 이어 6월까지 천지인, 노래 마을, 손병휘, 연영석, 안혜경, 안치환과 자유 등이 한달에 한번 꼴로 나올 예정이다. 백경석 피디는 기획의도에 대해 “대형 방송사들이 민중가요를 주목하지 않는 현실에서 민중음악이 확보해 놓은 미학적 가치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때 민중가요를 부르던 학생들과 노동자들은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꽃보다 아름다운 노래’에서 그 사람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