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8일 정규 10집 <에픽하이 이즈 히어 상(上)>을 발표하는 에픽하이. 아워즈 제공
선후배 가수의 협업(컬래버레이션) 열풍이 거세다. 아이돌 가수끼리의 ‘콜라보’가 대세였던 가요계에 최근 들어 세대와 장르를 뛰어넘어 후배 가수와 협업하는 중·장년 가수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가요계가 위축된 상황에서 음악적 스펙트럼과 팬층을 넓히려는 전략적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후배 가수와의 협업으로 기대를 모으는 대표적인 팀은 에픽하이다. 그동안 여러 가수와 공동 작업을 해왔지만, 오는 18일 발표하는 정규 10집 앨범 <에픽하이 이즈 히어 상(上)>에서는 기존에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장르의 후배 가수와 힘을 합쳤다. 지코와 아이돌 그룹 투에니원 출신 씨엘을 비롯해 싱어송라이터 헤이즈, 포크 가수 김사월, 래퍼 창모, 넉살, 우원재, 미소, 지소울 등이 이번 앨범에 참여했다. 타이틀곡은 ‘로사리오’와 ‘내 얘기 같아’ 두 곡이다. ‘로사리오’는 지코와 씨엘이 피처링을 맡았고, ‘내 얘기 같아’는 헤이즈가 힘을 보탰다.
다만, 논란이 되는 지점도 있다. 남성 아이돌 그룹 아이콘 출신인 비아이도 이번 앨범에 피처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는 2016년 4~5월 지인을 통해 대마초와 엘에스디(LSD·마약류로 지정된 환각제)를 사들인 뒤 일부를 투약한 혐의를 받았다. 지난해 4월 검찰로 송치된 뒤,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다. 일각에서 그의 복귀가 이르다는 반응이 나온다. 그는 마약 투약 혐의가 불거진 2019년 아이콘을 탈퇴했으며, 당시 소속사였던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와의 전속계약도 해지됐다.
지난달 22일 신곡 ‘호피무늬’를 발표한 가수 엄정화. 이번 신곡에는 마마무의 화사가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엄정화 에스엔에스(SNS) 갈무리
데뷔 29년차인 엄정화도 최근 후배 가수와 협업한 작품을 발표했다. 그가 지난달 22일 공개한 신곡 ‘호피무늬’에는 마마무의 화사가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영원한 것 없다고 해도 영원할 순간은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노래로, 엄정화가 신곡을 낸 것은 3년 만이다. 이번 신곡 발표는 지난해 가을 <문화방송>(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를 통해 결성한 프로젝트팀 ‘환불원정대’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엄정화를 비롯해 이효리, 제시, 화사가 당시 팀 활동곡을 정하기 위해 후보곡을 하나씩 들고 왔는데, 엄정화가 당시 선보인 노래가 바로 ‘호피무늬’였다. 팀 활동곡으로 채택되진 않았지만, 화사의 지원사격을 받아 솔로곡으로 발표한 것이다.
자신이 제작한 아이돌 그룹 원더걸스 출신의 선미와 지난해 여름 듀엣곡 ‘웬 위 디스코’를 발표한 박진영. 제이와이피(JYP)엔터테인먼트
가요계 ‘사제지간’의 협업도 눈에 띈다. 그 중심에는 박진영이 있다. 그는 자신이 제작한 아이돌 그룹 원더걸스 출신의 선미와 지난해 여름 듀엣으로 발표한 ‘웬 위 디스코’로 음원 차트를 휩쓴 뒤, 지난달 31일에는 자신이 키워낸 비(정지훈)와의 듀엣곡 ‘나로 바꾸자’를 내놨다. 박진영이 작사·작곡한 노래로, 한 여성을 두고 다투는 두 남성의 이야기다.
지난달 31일에 비(정지훈)와 듀엣곡 ‘나로 바꾸자’를 발표한 박진영. 박진영 에스엔에스(SNS) 갈무리
이승철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지난해 11월, 데뷔 35주년을 맞아 자신의 2013년 곡 ‘마이 러브’를 소녀시대 멤버 태연과 듀엣으로 불러 화제를 모았다. 그는 올해 상반기에 35주년 기념 음반을 발표할 계획인데, 또 다른 후배 가수와 협업할지 관심이 쏠린다. 앞서 이선희도 지난해 6월 정규 16집 앨범 <안부>를 발표하며 앨범과 같은 이름의 타이틀곡을 엑소(EXO)의 찬열과 함께 불렀다.
지난해 데뷔 35주년을 맞아 자신의 2013년 곡 ‘마이 러브’를 소녀시대 멤버 태연과 듀엣으로 다시 부른 이승철. 이승철 에스엔에스(SNS) 갈무리
앞서도 선후배 가수의 조합은 계속 이어져 왔다. 하지만 그간 주로 젊은 가수의 앨범에 선배 가수가 목소리를 보탰던 것과는 달리 최근에는 선배 가수의 곡에 후배 가수가 힘을 싣는 것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이런 신구 세대의 협업은 음악적으로 보완이 된다는 점에서 서로에게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동윤 대중음악평론가는 “후배 가수는 선배의 관록 덕에 무게감과 안정감을 취할 수 있고, 선배 가수는 후배의 스타일과 최신 흐름을 체득함으로써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다”며 “경력이 오래되고 인지도가 높은 가수라 하더라도 젊은 음악 팬에겐 관심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인 만큼, 음원의 주 소비층인 젊은 세대에 어필할 수 있는 후배 가수와 협업하려는 선배 가수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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