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여성 차우(왼쪽)가 <한국의 베트남 근로자> 첫 방송을 녹음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방송국 제공
렝안타이·뽀로데시의 즐거운 라디오
<렝안타이의 즐거운 편지> <뽀로데시 친구들>…. 낯설지만 라디오 프로그램 이름이다. ‘렝안타이’는 타이 노동자라는 뜻의 타이말이고, ‘뽀로데시’는 외국에 사는 사람을 뜻하는 네팔말이다. 외국인 노동자를 떠올렸다면 빙고! 지난해 5월 개국한 인터넷 ‘이주노동자방송국’(migrantsinkorea.net)의 프로그램들이다.
개국 8개월이 넘어서며 프로그램별로 다시 듣기 청취자가 적게는 80여명에서 많게는 200명까지 이른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이주노동자방송국은 지난 1일 다국어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다. 네팔어, 방글라데시어, 몽골어, 타이어, 인도네시아어, 베트남어, 미얀마어, 영어, 한국어 등 9개 나라 말로 음악과 새 소식을 전한다. 제도권 방송국은 엄두도 못낼 일일 터, 자원과 자본이 없어서라기보다는 관심이 없어서가 아닐까. 40만명에 이르는 외국인 노동자를 포함해 100만명으로 추산되는 외국인을 생각할 때 아쉽지 않을 수 없다. 이주노동자방송국의 작지만 힘찬 발걸음들이 뜻깊은 이유이기도 하다.
월요일 <몽골어 뉴스>(아리미 진행), 화요일 <렝안타이의 즐거운 편지>(쥴리아 진행), 수요일 <버마어 뉴스>(조나잉 진행), 목요일 <한국의 베트남 근로자>(차우 진행) 등 매일 1~2시간씩 방송되며 머잖아 매일 2시간씩 고정 편성될 계획이다.
1~2시간이 작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프로그램을 만들고 진행하는 이들은 모두 낮엔 생업에 종사해야 한다. 봉제공장, 엘시디 제조 회사, 조명 회사 등에서 여느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땀을 흘린다. 그리고 주말에 모여 다음주에 내보낼 방송을 준비한다.
고된 일이지만 ‘꿈’이 이들의 발길을 옮긴다. 단기적으론 다국어 웹사이트를 여는 것이 목표다. 외국인 노동자 시민기자들이 자신의 말로 기사를 올리고 한국어로 번역해 한국어 사이트에 올리는 일이다. 이들 나라의 문화와 역사부터 현재의 정치적 상황, 사건·사고까지 기사화될 수 있다. 일간지나 방송이 이런 국제뉴스들을 받아 보도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장기적으론 다문화 공동체가 돼가는 한국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미디어 기능을 수행하겠다는 목표다. 다른 말로 ‘국경 없는 네트워크 구축’이며 한국의 기성 언론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대안 미디어다.
이주노동자방송국은 진보네트워크 참세상과 노동네트워크로부터 서버 등을 후원 받고 한국문예진흥원과 서울문화재단에 사업 기금 공모에 뽑히면서 서울 홍익대 앞에 사무실을 마련해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운영비는 부족하다. 자원활동가 박경주씨는 “적더라도 월급을 받을 수 있다면 이 일에 전념하겠다는 재능있는 이들이 많지만 그럴 형편이 안 된다”며 재정적 어려움이 가장 크다고 털어놓았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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