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투 리브
이 영화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건 시간이 흐르며 한없이 한없이 메말라가는 주인공이다. 시간과 바람에 야위는 모래성처럼 불쑥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젊은 청년의 수척해가는 몸은, 죽음을 관념적이고 모호한 세계로 내몰지 않는다. 명시적인 현실만 있을 뿐이다. 뜻밖으로 죽어야 하는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모든 이를 저 먼저 떠밀지 않으면 안 되는 고독과 다투는 현실에 ‘몸’은 바투 가닿는 것이다.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타임 투 리브>가 9일 개봉한다.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로 불리며 프랑스 영화의 기수 노릇을 하는 그의 이전 작품들과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소재도 극의 전개도 일상적이고, 무엇보다 영화는 조용하고 서정적이다.
주인공 로맹(멜빌 푸포)이 동성애자라든가, 그의 가족들 사이는 왜 어근버근한지, 잘 나가던 사진작가로서 갑작스레 겪을 법한 충격과 좌절은 무엇인지, ‘흔적’에 대한 일체의 미련이 없는 그가 우연히 만난 불임 남편과 그의 아내로부터 자식을 갖게 해달라는 부탁을 왜 수락하는지 따위에 영화는 크게 관심 두지 않는다. 서서히 풍화되고 마는 한 인간 로맹이 있을 뿐이다.
로맹은 자신이 죽어가는 사실을 오직 할머니(잔느 모로)에게만 알린다. 이 이기적인 죽음을 두고서 둘이 나누는 대화는 일면 고해성사와 용서를 위한 기도문처럼 들린다.
할머니는 남편이 죽자 자식, 즉 로맹의 아버지로부터 도망쳤음을 고백한다. 자식을 보면 남편이 생각났고, 달아나지 않았다면 자신 역시 죽었을 터라며. 누구든 제 삶을 영위하려는 게 본능이고, 영위하는 자체가 삶의 고갱이임을 죽어가는 로맹이 확인하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웅변적이다. 그래서 <타임 투 리브>의 리브(leave)는 마치 ‘떠남’이 아닌 또 하나의 ‘남김’인 양 울린다.
야윈 로맹의 몸이 어린 아이처럼 작아졌을 때, 바다를 바라보는 소년 로맹의 말간 풍경이 넓은 화면 안에서 겹친다. 기억의 시작이고 순수의 마지막인 그 지점에서 비로소 로맹은 일몰을 맞으며 죽는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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