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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인터뷰]1천만 신화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

등록 2006-02-09 21:18수정 2006-02-10 19:10

"천만 목표하지 않았는데 관객이 이끌어주셨다"

영화 '왕의 남자'가 1천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면서 또 한 명의 '스타 탄생'이 이뤄졌다. 배우가 아니다. 바로 이준익 감독이다.

이 감독은 '키드캅' '황산벌'에 이어 세번째로 메가폰을 잡은 '왕의 남자'로 속칭 '대박'을 터뜨렸다. '왕의 남자'의 이 같은 돌풍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이준익이라는 늦깎이 감독 때문이기도 했다.

그간 그는 씨네월드라는 제작사 대표로서 '아나키스트' '달마야 놀자' 등을 만들어왔다. 스스로 "경영보다는 기획에 참여했던 제작자였기 때문에 감독으로서의 전직이 어렵지 않았다"고 밝히기는 했지만 이 감독에게 이만한 능력이 숨어 있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이 감독은 스스로를 일컬어 '레프트(left)에 편향된 사람'이라고 말해왔다. 부유한 삶보다는 가난했고, 그래서 민초들의 삶에 시선을 뒀다. 연극 '이'에서와 달리 장생을 주연으로 내세웠던 것도 그의 이런 성향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 영화는 만든 사람이 1천만을 목표로 만들지는 않았는데, 관객이 1천만명으로 이끌어주셔서 더욱 감사드린다"며 관객에게 1천만 돌파의 공을 돌렸다.

다음은 일문일답.

--도대체 '왕의 남자'가 이런 기록을 세운 것은 왜일까.

▲일단은 우리나라 전통 문화가 관객의 마음 속 깊숙이 숨어 있었는데, 이 영화를 통해 온몸을 던지듯 퍼져서 공감대를 형성했다.

--사극은 흥행에 취약한 장르로 인식돼 왔다. 지금까지 빅히트한 작품도 현대사적인 의미를 담은 영화였다.

▲20세기가 이데올로기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탈이데올로기 시대다. 21세기 들어 민족주의도 부활하고 있다. 대중의 위대함을 새삼 느낀다. 우리들의 전통 문화에서 뭔가를 찾아내려는 잠재된 욕구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사극이 이제는 비주류 장르가 아니라 주류 장르로 활성화되는 분기점에 와 있다고 본다. '왕의 남자'를 통해 현실로 다가왔다. 결국 사극을 잘 만드는 나라가 영화 선진국이다. 이를테면 영국, 프랑스, 일본 등등.

사극을 만들 수 있는 나라가 별로 없다. 한국이 영화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결정적 지점에 왕의 남자가 기여했다. 미국도 그래서 카우보이 영화 찍는 것 아닌가. 남들은 500년 전 이야기로 영화를 만드는 데, 우리는 그동안 50년 전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왔다.

--제작 규모도 크지 않았고, 스타도 없었는데 성공했다.

▲관객이 예측대로 따라온다면, 관객의 위대함을 잃어버린다. 관객의 위대함은 예측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타가 없고, 대규모 제작비도 아니고, 사극이라는 불리함에 오히려 움직였다.

--가장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우리의 조상들이 무엇보다 고맙다. 우리의 조상이 없었다면 이 영화가 없었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그다지 없다. 힘든 것을 오히려 즐겼다고 생각한다. 고통을 즐기지 않고 카타르시스에 이를 수 없다.

--동성애 대목에 대해 말들이 많다.

▲지금 이 영화를 두고 동성애 영화라고 보는 관점은 서양의 호모 섹슈얼의 관점과 일치된 시선이다. 이미 우리 역사 속에는 서양의 호모 섹슈얼 관점이 아닌, 광대들의 삶에 대한 리얼리티였다. 그건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다. 영국에서도 셰익스피어 이전까지 여자가 무대에 설 수 없었다. 동성애가 표현의 본질이 아니라, 우리 역사 속 문화에 있었던 실재다. 서양의 관점으로 보지 말아달라.

--제작비가 적어 표현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가.

▲세트가 협소해 아쉬웠다. 연산군은 창덕궁에서 기거했는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곳이다. 보존 차원에서 그곳에서 찍지 못한 것이 가장 안타깝다. 그곳보다 훨씬 질이 떨어지는 곳에서 촬영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 사람들은 우리 궁궐의 향취를 절반도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 황제'의 이탈리아 감독은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에서 찍었다. '왕의 남자'의 궁궐은 너무 아름답지 못하다는 게 안타깝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양의 명품에 열광한다. 명품은 히스토리를 기반으로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샤넬, 프라다 등은 조선의 명품보다 질이 훨씬 떨어진다. 우리가 도외시하는 까닭에 아무도 탐닉하지 않으려 한다. 명품에도 용불용설이 적용된다. 우리 히스토리를 애용해야 명품이 된다.

--배우들도 화제로 떠올랐다. 특히 이준기는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됐다.

▲배우들이 한 역할은 진정 위대한 작업이다. 연산은 역사 속에서 폭군으로, 기록으로만 존재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정진영이라는 배우가 그 인물에 온기를 불어넣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장생 역의 감우성은 우리 역사 속의 천박한 광대라는 신분을 뜨거운 열정을 가진 예술혼으로 승화시켰다.

이준기가 연기한 공길은 21세기형 인간이다. 20세기는 흑백논리가 만연하는 냉전 이데올로기의 시대였다. 누구나 분명히 자기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었다. 그런데 21세기는 개인주의가 존중받는 시대다. 개인주의는 이데올로기로부터 모호하게 반응한다. 준기는 그 모호함의 연기를 너무 잘 해냈다.

강성연은 장녹수라는, 아주 편협된 인간으로 치부되던 존재에게서 여인의 내면을 훌륭하게 끄집어냈다. 장항선은 조선의 내시라는 존재에 역사적 존재감을 확장시켰다. 유해진은 진정한 광대로서의 순박함을 천박하지 않게 표현했다.

http://blog.yonhapnews.co.kr/kunnom

김가희 기자 kahee@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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