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비만소년 수난사 ‘신성일의 행방불명’

등록 2006-02-15 16:59수정 2006-02-16 16:57

신재인 감독의 첫 장편…16일 개봉

신재인 감독의 첫 장편 <신성일의 행방불명>이 16일 개봉한다. 신 감독은 <재능 있는 소년 이준섭> <그의 진실이 전진한다> 등의 단편으로 일찌감치 주목을 받아왔던 이다. 엷은 필모그래피에도 불구하고 그만의 신랄한 은유와 상징 따위로 신재인표 작품의 계보가 어느새 형성되는 듯하다. 감독은 이를 “막힘 없는 아이디어와 막 찍음”으로 말한다. 이렇게 막나가는 한국 영화, 드물다.

<…행방불명>도 그 계보 안에서 빛을 발한다. 영화가 엄연히 신성일보다 신재인이란 이름으로 관심을 모으는 까닭이다. 신성일이 있건 없건 다행인 건, 신재인이 행방불명된 영화는 아니란 사실이다.

왜 신성일인가 당돌하게 붙여놓은 주역들의 이름을 먼저 봐야할 것 같다. 신성일, 김갑수, 이영애가 등장한다. 물론 우리가 잘 아는 그들이 아니다. 대놓고 믿음을 배반한다. 이름은 우리의 신념 세계를 가장 힘있게 환기시키는 기호지만, 여기선 신념 체계의 위약함을 에두르는 기호로 활용되고 있다.

신 감독은 “이름만 같을 뿐 수많은 다양한 삶을 영위하고 있을 다른 ‘신성일들’에 대한 관심”이 배경이 됐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편협한 믿음 세계, 이른바 ‘동굴의 우상’을 보기 좋게 비웃는 것이다. 신성일이나 이영애가 아닐 이유는 없지만, 굳이 신성일이거나 이영애일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신성일은 왜 뚱뚱한가 황무지 같은 곳에 홀로 자리잡은 고아원. 오직 귀티 나는 이는 원장(예수정)뿐이다. 소년 신성일(조현식)은 금식 중이다. 식욕은 하느님이 내린 천벌이며, 원죄라고 날조한 원장의 교리를 원생들은 절대적으로 떠받들고 있다. 성일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독실하다.

먹는 것을 죄악시하는 그들은 화장실이나 빛 들지 않는 곳에서 초코파이 따위로 겨우겨우 연명할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믿음으로 배가 부르다. 누구보다 신심이 두둑한 성일이 누구보다 비만한 것도 그렇게 납득된다. 믿음과 현실은 이렇게 또 어긋난다.

왜 하필 식욕인가 신실한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이영애(문슬예)가 다른 고아원으로부터 전입온 뒤부터. 놀이터 한복판에서 밥을 먹고, 성일의 금식을 다이어트 정도로 이해하는 그를 원생들은 광장 한가운데서 대변을 보는 이 대하듯 한다.


‘동물적 본능’이 ‘인간적 사회’에 포섭될 때 운명이 갈린, 추방당한 본능과 살아남은 본능조차도 위선적 교리에 의한 게 아닐까 영화는 생각게 한다.

그래서 갑수(우준영)가 원장을 가두고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고아원을 되찾고자 꾀하는 ‘혁명’은, 배설의 욕망과 같은 추방당한 본능에 대한 사면을 함께 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본능조차 인위적 믿음의 희생물로 삼은 세상에 대한 사자후인 셈이다.

우리는 그 고아원에 살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성일이 제 신념을 저버린 고아원의 모든 위선에 분노하면서 뛰쳐나온 세상의 속살은 더욱 가혹하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표정으로 먹고 먹는 일상이 성일의 눈에 가득 들어온다.

성일이 제 믿음을 버리지 않는 한, 이를 가장 극단으로 배반하는 현실은 성일에게 고아원보다 더 무도한 생지옥이며 그래서 결국 그를 구도자가 되길 강요하는 곳이다. 다른 종류, 다른 층위의 신념으로 저마다 배반당하는 오늘의 여럿 ‘성일’들이 고단하게 버텨내야 하는 곳이 바로 여기 현실임을 말하는 것 아닐까. 아이들을 통해 어른들의 세계를 꼬집는 우화의 힘이다. 시네코아 개봉.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사진 스폰지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