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다룬 영화 <스펜서> 스틸컷. 영화특별시에스엠씨(SMC) 제공
모두가 사랑했지만, 단 한 사람으로부터는 사랑받지 못한 여성.
1981년 7월 영국 스펜서 백작의 셋째 딸인 다이애나가 찰스 왕세자와 결혼했을 때, 스무살의 그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여성처럼 보였다. 부모의 이혼으로 외로운 유년 시절을 보낸 다이애나는, 고교 중퇴 뒤 유치원 보육교사로 일하다 13살 위의 왕세자를 만나 왕족이 되었다. 그는 근엄한 왕실과는 다른 분방한 매력으로 이내 영국인들을 사로잡았다.
로열 패션의 아이콘이자 세기의 연인으로 이목을 끌었지만, 정작 남편인 왕세자의 눈길은 결혼 전부터 깊은 연인 사이였던 커밀라 파커 볼스에게 향해 있었다. 자선과 구호 활동에 헌신하며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렸으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다섯번의 자살 시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자, 자신 역시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었다. 런던의 황색 타블로이드 신문들이 다이애나와 뭇 남성의 연애를 1면으로 다루면서 파경은 피할 수 없었다. 3년 별거 끝에 1996년 8월 이혼한 그는 “이 결혼 생활은 남편과 나 자신, 커밀라 세 사람의 결혼이었다. 그래서 좀 붐볐다고 할 수 있다”고 회고했다.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다룬 영화 <스펜서> 스틸컷. 영화특별시에스엠씨(SMC) 제공
이듬해 8월, 다이애나는 파리에서 연인인 도디 파예드와 차로 이동하던 중 파파라치를 피하려다 사고로 숨졌다. 극적인 죽음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이었던 다이애나를 또다시 톱뉴스에 오르게 했다. 이 비극을 통해서야 비로소 그는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사람들과 파파라치들의 극성으로부터 풀려났다.
16일 개봉하는 영화 <스펜서>는 화려했지만 고독한 삶을 살았던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그린 드라마로, 실화에 픽션을 가미한 작품이다.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다이애나가 왕실의 적의 속에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1992년 크리스마스가 배경이다.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내기 위해 엘리자베스 여왕과 왕가가 샌드링엄 별궁에 모였지만, 길을 헤맨 다이애나는 뒤늦게 도착한다. 기념사진 촬영에도 가장 늦게 합류한 다이애나는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다 정해져 있는 숨 막히는 왕실 분위기에 짓눌려 먹는 족족 구토를 한다. 서가에서 우연히 발견한 앤 불린의 책을 읽으며 환영에 시달리는 다이애나. 헨리 8세의 두번째 부인으로, 후궁과 결혼하려는 남편에 의해 불륜과 이단, 모반 등의 혐의로 처형당한 앤 불린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 것. 별궁 근처 폐허가 된 자신의 저택을 둘러보던 다이애나는 왕비가 되기를 거부하고 왕자들과 별궁을 떠난다.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다룬 영화 <스펜서> 스틸컷. 영화특별시에스엠씨(SMC) 제공
“모든 제작진이 영화를 믿도록 영감을 불어넣었다”는 파블로 라라인 감독의 말처럼 다이애나 역을 맡은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는 압도적인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다이애나의 생전 영상과 인터뷰를 분석해 영국식 발음을 익혔다는 스튜어트는 <스펜서>로 전세계 영화시상식에서 27차례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오는 27일(현지시각)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라 있다. 다이애나처럼 황색언론과 파파라치로부터 시달려온 스튜어트는 “다이애나는 사람들에게 유대감을 느끼게 하고 왕실과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주며 대중의 시선을 바꿨지만, 역설적으로 외롭고 고립된 인물이었다”고 캐릭터에 대한 애틋함을 드러냈다.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다룬 영화 <스펜서> 스틸컷. 영화특별시에스엠씨(SMC) 제공
샐리 호킨스, 숀 해리스, 티머시 스폴 등 개성파 배우들의 연기도 몰입을 거든다. 럭셔리한 드레스와 슈트, 연회와 사냥 등 로열패밀리의 호화로운 일상도 볼거리를 더한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