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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디즈니는 왜 완다를 ‘모성 괴물’로 만들었나

등록 2022-05-06 20:19수정 2022-05-07 01:20

[한겨레S] 손희정의 영화담(談)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

‘돌보는 어머니’ 욕망에 속박된
동구권 출신 여성 캐릭터 완다
디즈니 다른 여성 히어로와 달리
정상성 포박되게 그린 이유 뭘까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에 등장하는 완다 막시모프.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에 등장하는 완다 막시모프.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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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다 막시모프. 쓸쓸한 이름이다. <완다비전>(2019)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음으로써 마녀 스칼렛 위치로 각성했던 완다는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2022)에서 다시 한번 모진 상황에 놓인다. 엠시유(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완다에게 왜 이렇게까지 가혹한가?

영화 시작 부분, 아메리카 차베스와 디펜더 스트레인지(다른 평행우주를 살아가는 또 한명의 닥터 스트레인지)가 거대한 문어에게 쫓기고 있다. 강력한 흑마술인 ‘다크홀드’에 대적할 수 있는 ‘비샨티의 책’을 손에 넣기 직전 디펜더는 사망하고, 공포를 느낀 아메리카는 다른 평행우주로 통하는 포털을 열어 지구-616으로 탈출한다. 그곳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버전의 닥터 스트레인지가 위기에 처한 아메리카를 구해준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는 닥터의 질문에 아메리카는 답한다. “멀티버스를 여행할 수 있는 능력 때문에 악마에게 쫓기고 있다”고.

‘정상 가족’의 결계에 갇힌 완다

멀티버스를 여행한다는 건 수많은 평행우주들의 괴멸을 초래할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한 일. 그 능력이 악한 자의 손에 들어간다면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흑마술이 연관된 일이라는 걸 깨달은 닥터는 강력한 마법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바로 완다 막시모프다. 그러나 이내 아메리카를 위협하는 마법사가 스칼렛 위치, 즉 완다 본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제 아메리카의 목숨을 빼앗아 그의 능력을 취하려는 스칼렛 위치와 이를 막으려는 닥터 스트레인지 사이에 멀티버스를 가로지르는 싸움이 시작된다.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줄거리를 설명하는 것조차 간단하지 않다. 이 세계를 이해하려면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에서부터 <완다비전>까지, 적어도 네편의 영화와 한편의 드라마를 봐야 한다. 그런데 수많은 평행우주를 아우르며 이야기가 증폭되는 이 거대한 세계관을 추동하는 갈등은 단 하나, 완다 막시모프의 뒤틀린 모성이다.

&lt;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gt;.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물론 완다에게도 이유가 있다. 동유럽 소코비아 출신인 완다는 어렸을 때 폭격으로 부모를 잃는다. 이후 쌍둥이 오빠와 함께 하이드라의 실험 대상이 되면서 사람들의 정신을 조종할 수 있는 뮤턴트가 되는데, 우여곡절 끝에 오빠마저 사망한다. 혈혈단신의 완다를 위로해주었던 건 연인 비전뿐이었다. 하지만 완다는 타노스와의 전쟁에서 세계를 구하기 위해 자기 손으로 비전을 죽여야 했다. 완다는 비전과 함께 가정을 꾸리기로 했던 교외의 작은 마을 웨스트뷰로 돌아가 비전을 애도하던 중 비탄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폭주하게 된다. 웨스트뷰 전체에 마법의 결계를 치고 마을 사람들을 염력으로 사로잡아 완다-비전 부부의 완벽한 삶에 필요한 꼭두각시들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드라마 <완다비전>의 설정이다.

자신이 만든 세계에 갇혀 있다는 걸 몰랐던 완다는 행복한 결혼 생활 중 쌍둥이를 낳는다. 현실에서는 끊임없이 박탈당했던 ‘정상 가족’의 삶을 마법의 세계 속에서 드디어 영위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하지만 그것이 판타지일 뿐만 아니라 타인의 희생 위에 세워진 허위라는 걸 깨달은 완다는 웨스트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결계를 해제하기로 결심한다. 문제는 완다의 ‘정상 가족’은 오로지 결계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완다비전>의 끝, 완다는 또다시 비전과 쌍둥이를 잃는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전설 속의 마녀 스칼렛 위치로 각성하게 된다. 타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는 영웅의 탄생이었다.

흥미로운 건 <완다비전>이 195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미국 대중문화사를 수놓았던 시트콤들을 패러디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트콤은 1950년대 <아빠가 제일 잘 알아>부터 1980년대 <코스비 가족> 등에 이르기까지 ‘정상성’을 오락으로 포장하여 내면화시키는 억압적인 대중문화 양식이기도 했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시트콤은 때로 그 정상성을 비틀면서 균열을 내고 전복적인 웃음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다. <완다비전>은 시트콤 양식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면서 완다의 성장을 그려낸다. 이 잔인한 성장은 미국 대중문화에서 그려지는 ‘정상성’에 대한 고통스럽지만 가치 있는 부정의 결과이기도 했다.

허술한 이해로 공허해진 캐릭터

<대혼돈의 멀티버스>로 오면 <완다비전>이 정성 들여 묘사한 과정은 그저 막강한 빌런의 등장을 위한 배경 설명으로 전락하고 만다. ‘다크홀드’를 손에 넣은 스칼렛 위치는 다른 평행우주들에서 쌍둥이들과 행복한 한때를 보내는 수많은 완다들의 존재를 알게 되고, 다른 완다를 제거하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한다. 난폭하게 다른 생명들을 바스러뜨리려는 ‘모성 괴물’에 맞서는 건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가진 남성 마법사 닥터와 그의 제자(혹은 유사 딸)인 아메리카다. 엠시유는 전통적인 정상성의 가치를 내면화한 스칼렛 위치를 돌더미에 묻어버리면서 새로운 라틴아메리카계 여성 히어로 아메리카 차베스의 등장을 알렸다.

&lt;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gt;.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영화를 보고 나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완다의 시간은 어째서 이토록 끈질기게 부정당하는가? 그리하여 완다는 왜 미국 중산층의 가치인 ‘돌보는 어머니’라는 오래된 욕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가. 물론 여성의 ‘낳고 기르고 돌보는’ 능력은 위대하다. 그 자체를 무가치한 것으로 폄하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디즈니 페미니즘 속에서 다른 히어로들이 모성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동구권 출신의 블랙 위도우와 스칼렛 위치만이 모성을 ‘박탈’당한 것으로 그려진다는 건 다분히 의심스러운 일이다.

엠시유라는 용광로(melting pot)가 동구권을 타자로 상정하면서 모성을 향수의 공간으로 활용한다면, 엠시유가 제안하는 ‘위대한 미국’이 이끄는 미래는 자연화된 모성과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 다시 포박될 수밖에 없다. 완다가 포기했던 그 ‘정상성’이 디즈니 페미니즘이 ‘다음’을 상상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화려한 스펙터클과 흥미로운 상상력에 미치지 못하는 나이브한 지정학적 이해가 완다의 시간을 공허하게 만들어버렸다.

영화평론가,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저자. 개봉 영화 비평을 격주로 씁니다. 영화는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고 관객들이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시작됩니다. 관객들의 마음에서, 대화에서, 그리고 글을 통해서. 영화담은 그 시간들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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