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핏차퐁 위라세타쿤, 펜엑 라타나루앙 등과 함께 타이 영화의 새물결을 만들고 있는 위시트 사사나티앙의 영화 <시티즌 독>이 9일 개봉한다. 타이에서는 이미 지난 2003년 12월말 개봉했고, 지난해 제 1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3차례 상영돼 전회 매진을 기록하며 관객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프리차야 핀카엡 감독의 <옹박>과는 또다른 의미에서 타이적 색채가 강한 독특한 판타지 드라마다. 방콕으로 상경한 순수 청년 팟(마하스무트 분야락)은 정어리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다 손가락이 잘린다. 피칠갑 비극을 상상하기 쉽지만,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통통 튀어다니던 손가락은 팟과 눈물겨운 상봉을 한다. 공장을 그만 둔 팟은 대기업 경비원으로 취직하고 그 곳에서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흰 책’의 내용을 알기 위해 몸부림치는 꿈 많은 여자 진(상통 켓우통)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알레르기가 생기는 진을 태우기 위해 택시기사가 된다. 내러티브의 축은 진을 향한 팟의 순수한 사랑이다. 하지만 <시티즌 독>은 내러티브보다 판타지적인 상상력과 이미지에 힘을 주는 영화다. 그래서 팟이 손가락을 찾고 직업을 바꾸는 과정에서 만나는 주변 ‘것’들이 만들어내는 예측불가능한 곁가지들도 무시할 수 없다. 하늘에서는 토마토가 쏟아지듯 붉은 헬맷이 쏟아지고, 이 헬맷을 맞아 숨졌던 남자는 다시 일어나 생업에 뛰어든다. 어린 소녀로 보이는 여자는 스물두살의 꼴초 소음중독자이며, 말하는 곰인형 친구와 결혼해 전화로 사랑을 속삭인다. 죽었던 팟의 할머니가 물고기밥과 비료 등을 거쳐 도마뱀으로 환생하기도 하고, 환경운동가가 된 진이 주워모은 플라스틱병들이 모여 거대한 산을 이루기도 한다. 감독은 ‘시티즌 독’을 ‘대도시의 소인들’이라고 규정했다. <시티즌 독>이 만들어낸 판타지들은 삭막하고 희망이 없는 도시의 소시민들이 꾸는 꿈이자, 그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살 수 있는 방법이다. 또 타이적인 것을 강조했다는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와 미장센들도 대도시, 소시민, 판타지라는 부조화스러운 이미지들을 슬프고 비참한 것에서 유쾌하고 희망이 넘치는 것으로 탈바꿈시키는 힘을 보여준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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